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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값 오르면 철강·화학·음식료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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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거시경제 지표는 증시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절대 역행하지 마라.”

 미국 어바인대의 피터 나바로 교수가 자신의 책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에서 제시한 투자원칙이다. 환율이나 물가·경제성장률 같은 큰 흐름을 거슬러서는 수익을 낼 수 없으니 “기차가 달리는 방향으로 올라타라”는 조언이다.

 9일 시장을 덮친 거시경제의 파도는 환율이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가치는 1041.4원으로 전날보다 10.8원 급등했다. 원화값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040원대에 진입한 것이다.

 원화강세는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수급 면에선 긍정적인 요인이다. 원화값이 앞으로도 오를 거라고 예상되면 외국인들이 환차손에 대한 걱정 없이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들일 수 있다. 현대증권 이승준 연구원은 “최근 열흘간 원화값이 오르면서 외국인 매수세가 강해지고, 외국인들이 매수에 나서면서 다시 원화값을 끌어올리는 상승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원화강세가 모든 업종의 주가를 끌어올리는 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원화값이 오를 땐 철강·화학 같은 경기민감주나 음식료 등 내수주를 담으라고 추천한다. 대신증권은 원화가치가 심리적 저지선을 뚫고 상승했던 2004년 11월(1150원 선)과 2006년 1월(1000원 선) 업종별 주가등락률을 비교해봤다. 그 결과 철강금속과 전기가스·화학·음식료 업종이 혜택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11월의 경우 코스피가 5.2% 상승하는 동안 철강금속은 18.9%, 전기가스는 10.8%, 화학은 8.9%, 음식료는 7.6% 올랐다. 2006년에도 화학을 제외한 세 업종은 코스피 상승률을 이겼다.

 대신증권 오승훈 투자전략팀장은 “이들 업종은 철광석·천연가스·밀가루 같은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한 뒤 판매하는 구조”라며 “원화강세로 수출에선 타격을 받지만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수익개선 효과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이번에도 반복되고 있다. 9일 코스피 업종별 등락률을 보면 전기가스(3.31%)와 철강금속(2.89%)이 가장 많이 올랐다. 철강 대표주인 POSCO는 7~9일 사흘간 5% 넘게 상승했다. 반면 수출기업인 전차(電車)주는 이날 모두 약세로 돌아섰다. 삼성전자는 1.65%, 현대차는 2.01% 떨어졌다. 기아차(-2.47%)·LG전자(-1.3%)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원화값이 오르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에 타격을 입을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전자보다 자동차 업종의 낙폭이 컸던 건 자동차가 환율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자업계는 한국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높고 기술 수준도 뛰어난 데 반해 자동차 시장은 상대적으로 가격경쟁이 더 치열하다는 것이다. 다만 ‘원화강세=수출주 약세’ 공식이 최근 달라지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기업들이 해외 생산공장을 늘리면서 예전보다 ‘환율 리스크’가 줄었다는 것이다. 삼성증권 김용구 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원화가 강세를 보이던 시기를 살펴보면 철강과 음식료·유틸리티를 제외하고는 뚜렷한 강세업종과 약세업종이 보이지 않는다”며 “오히려 원화강세로 외국인 매수세가 들어오면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대형주가 가장 먼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이승준 연구원은 “2분기부터 글로벌 경기회복이 시작된다면 수출물량이 늘어 환율 악재를 상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환율은 방향성보다 속도가 중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연구원은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서서히 움직이면 기업들이 적응할 시간이 있지만 변동폭이 커질 경우 실적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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