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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거수경례 … 넌 되고 난 안 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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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 8일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울산)에서 나온 김종규(LG·왼쪽)의 거수경례 세리머니. 김종규는 “4차전 때 벤슨의 세리머니를 똑같이 되돌려주고 싶었다”고 항변했다. [사진 한국프로농구연맹]
벤슨의 세리머니.

지난 8일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울산)에서 나온 김종규(23·LG)의 ‘거수경례 세리머니’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스포츠에서 세리머니는 득점을 올리거나 승리했을 때 하는 자축 행위다. 세리머니가 요란할수록 상대를 자극하기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세리머니의 기준은 규정에 없는 불문율이다. 그래서 논란을 자주 일으킨다.

 김종규는 4쿼터 35초쯤 로드 벤슨(30·모비스)을 따돌리고 덩크슛을 터트렸다. 백코트를 하면서 김종규는 벤슨을 쫓아가 약 올리듯 거수경례를 했다. 심판은 그의 세리머니가 상대를 조롱하는 행위라고 판단해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했다. LG는 모비스에 자유투 1개를 공짜로 내준 셈이 됐는데 공교롭게도 LG는 모비스에 65-66, 1점 차로 졌다. 김종규는 경기 후 “4차전에서 벤슨이 덩크슛을 한 뒤 나를 향해 했던 세리머니를 똑같이 되돌려주고 싶었다”고 항변했다. 벤슨은 이틀 전 4차전에서 김종규를 제치고 덩크슛을 성공한 뒤 경례 세리머니를 했다.

화살을 엉뚱한 곳에 쏜 선수는? 2009년 포항 스테보가 수원 서포터스를 향해 활쏘기 세리머니를 했다가 경고를 받았다(위). 2011년 이충성(일본)이 했을 땐 문제가 없었다. 활은 그의 친정팀 산프레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AP·중앙포토]

 벤슨은 정규시즌에서 경례 세리머니를 자주 했다. 그런데 지난 6일 챔프전 4차전에서 LG 데이본 제퍼슨(28)은 백코트하는 벤슨을 밀치며 항의했다. 벤슨이 김종규를 조롱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벤슨의 시선이 3m 앞에 있던 김종규를 향한 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벤슨이 먼저 김종규를 도발한 것으로도 볼 수 있고, 비슷한 장면에서 다른 판정을 내린 심판을 질책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많은 농구팬은 김종규의 행동에 실망했다. 벤슨이 원인제공을 했다고 해도 김종규가 벤슨 앞까지 쫓아가 상대의 세리머니를 따라 한 건 과했다는 의견이 많다. 한 네티즌은 “호기를 부릴 게 아니라 실력으로 되갚아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정규시즌과 4강 플레이오프까지 맹활약하며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히는 김종규는 5차전에서 4점·0리바운드에 그쳤다.

  비슷한 장면이 1997년 미국프로농구(NBA) 플레이오프에서 있었다.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은 애틀랜타 호크스의 디켐베 무톰보 앞에서 덩크를 터트린 뒤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세리머니를 하다 테크니컬 파울을 받았다. 심판은 조던이 무톰보를 조롱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반면 무톰보는 손가락을 까딱이는 세리머니를 수없이 했지만 테크니컬 파울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무톰보의 전매특허처럼 굳어졌기 때문에 심판에게도, 상대팀에도 용인된 것이다.

 몸이 부닥치고, 자존심이 충돌하는 스포츠에서 세리머니는 갈등의 씨앗이다. 종목에 따라 허용되는 세리머니가 있지만 도가 지나치면 싸움으로 번진다. 때로는 그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다.

경례했다가 출전 정지 당한 선수는? 프로야구 LG 김용의가 지난해 현충일에 경례 세리머니를 해 박수를 받았다(위). 그러나 프로축구 AEK 아테네의 기오르고스 카티디스는 나치식 경례로 시즌 잔여 경기 출전정지를 당했다. [AP·중앙포토]

 2012년 7월 3일 프로야구에서 두산 투수 스캇 프록터(37)가 던진 공이 머리 위로 날아오자 KIA 나지완(29)이 마운드로 달려나갔다. 나지완이 프록터로부터 홈런성 타구를 때린 뒤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세리머니를 했는데, 그에 대한 보복으로 빈볼을 던졌다고 확신한 것이다.

 야구에서는 홈런을 친 타자가 큰 동작 없이 그라운드를 빨리 돌아야 하는 게 불문율이다. 홈런을 맞은 투수를 자극하지 말자는 무언의 약속이다. 그러나 조금도 표정을 드러내선 안 되는 건지, 얼마나 빨리 뛰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통상 외국인 투수들이 한국 타자들의 홈런 세리머니를 못마땅해 한다. 2011년 KIA에서 뛰었던 투수 트레비스 브랙클리는 홈런을 때린 타자와 수차례 시비가 붙었다.

 상대를 크게 자극하지 않는다면 홈런 세리머니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6월 6일 두산전에서 역전홈런을 때린 LG 김용의(29)는 현충일을 기념해 거수경례 세리머니를 해 화제를 일으켰다. 그가 현역병 의장대 출신인 데다 LG 더그아웃 앞과 LG 관중석 앞에서 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박수를 받았다. 2007년까지 한화에서 뛰었던 제이 데이비스(44)도 3루 코치와 거수경례 세리머니를 했다. 경례 동작이 문제가 아니라 언제, 누구와 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축구에서는 친정팀을 상대로 골을 넣을 땐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게 매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레알 마드리드)는 지난해 3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에서 골을 넣은 뒤 달려드는 동료들을 향해 ‘세리머니를 하지 말라’고 손짓했다. 6시즌 동안 뛰었던 친정팀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45·아르헨티나)는 AS로마 시절 친정팀 피오렌티나전에서 골을 터트린 뒤 세리머니 대신 눈물을 흘린 일화도 있다.

 아스널에서 뛰다 맨체스터시티로 옮긴 에마뉘엘 아데바요르(30·토고)는 2009년 아스널전에서 골을 넣고 우사인 볼트처럼 100m를 전력질주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아데바요르는 아스널 팬들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득점할 때마다 세리머니를 하는 배구에서는 네트 너머 상대를 보며 과격한 액션을 하면 논란이 될 수 있다. 지난 1월 5일 현대캐피탈 아가메즈(29)는 삼성화재 레오(24)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레오의 세리머니가 과한 데다 현대캐피탈을 향한다는 것이었다. 아가메즈는 “존중받기 원한다면 상대를 존중하라”며 화를 냈다. 레오는 “난 그런 적이 없다”고 맞섰다. 이후 두 선수는 챔피언결정전이 끝날 때까지 신경전을 벌였다.

김식·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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