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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별기고

르완다 참사 20주년과 중앙아프리카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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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지난 7일로 르완다의 집단학살 발생 20년을 맞았다.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석하기 전에 먼저 중앙아프리카공화국부터 찾았다. 르완다와는 달리 이곳에선 비극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 평화가 찾아오도록 돕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지금 중앙아는 20년 전 르완다 학살과 같은 잔혹한 상황이 재연되는 위기에 처해 있다.

 무고한 주민들이 대량으로 학살당하는데도 해당국 정부가 자국민들을 보호할 의지나 능력이 없을 때, 혹은 심지어 정부가 그 폭력의 행사 주체 중 하나일 경우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인가. 이런 잔혹 행위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르완다 집단학살은 국제사회의 뼈아픈 실패로 기록돼 있다. 그 참혹함의 규모는 상상을 넘어섰다. 라디오 방송은 상대 부족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겼고, 동족끼리 죽이도록 선동했으며, 석 달 내내 하루에 평균 1만 명씩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후 국제사회는 이 끔찍한 사건으로부터 큰 교훈을 얻었다. 우리는 이제 국제형사재판소(ICC) 등을 통해 불처벌(impunity)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힘을 모아 대응하고 있다. 어떤 국가 원수는 전쟁 범죄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어떤 지도자는 반인도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현재 구류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ICC와 유엔이 주도하는 국제형사법 체계는 책임 규명(accountability)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런 노력은 ‘잠재적 범죄자들’이 근본적인 국제 규범을 위반하지 않도록 억지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보호책임(Responsibility to protect)’ 개념도 승인했다. 국제사회가 공감하는 잔혹 범죄에 대해서는 아무리 주권 국가가 국내 문제라고 주장하더라도 국제적 개입을 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해놓은 것이다.

 우리는 르완다의 교훈을 하나씩 실천하고 있다. 유엔이 새롭게 주창한 ‘인권 우선(Rights Up Front)’ 이니셔티브를 통해서다. ▶국가적·지역적 차원의 집단학살 예방 메커니즘 창설 ▶문제 발생 지역에 인권감시요원 파견 ▶제도 부족 및 상존 불만요소 해결 ▶남수단 평화유지군 활동 등 민간인 보호를 위한 역할 강화 등 2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스리랑카 내전과 현재 진행 중인 시리아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노력들은 지속적인 좌절에 부딪히고 있다. 이는 국가 간에 국익이 서로 상충하거나, 사태의 복잡성과 위험 요소로 인해 겁을 먹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른 나라들이 직면한 위기에 대한 논의가 언젠가는 자국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주저하고 있을 수도 있다.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고, 군사력을 투입하겠다고 공약하기를 원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무관심과 우유부단함이 가져올 결과들은 분명하다. 바로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이다. 지도자들은 “Never again(결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이라는 실패의 탄식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

 지금 중앙아를 보라. 이 나라는 지난 10년 동안 자국의 참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국가 붕괴로 인해 나라 전체가 무법천지가 되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다. 테러가 만연하며 대규모 살상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중앙아 위정자들은 서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싸우는 가운데 종교적 명분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 결과 무슬림과 그리스도 교인들 사이에 오랫동안 유지해온 평화가 무너졌다.

 국제사회는 지금이라도 긴급 군사지원에 나서야 한다. 위험에 처한 수많은 목숨을 구해야 한다. 거리에 경찰들을 배치하고, 시민들이 다시 삶의 터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프리카연합과 프랑스가 이미 군대를 보냈으나, 유럽연합(EU)의 파병 노력은 현재까지 진전이 없다. 정치적인 화해 노력도 함께 시작돼야 한다.

 현 상황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이는 극복할 수 없는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시에라리온과 동티모르 등 극적인 변혁을 이룬 성공 사례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중앙아도 같은 행보를 밟을 수 있다. 유엔은 앞으로 안정적이고 풍요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중앙아 정부를 지지할 것이다.

 국제사회는 말로만 대량 잔혹 범죄를 우려해선 안 된다. 참사를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때 결코 움츠러들어선 안 된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예방할 수 있는 것을 예방하고, 우리 눈앞에 벌어지는 잔혹한 범죄에 더욱 과감한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 모두 약자의 입장에서 고민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인권이 존중받고 존엄이 유지되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말이다.

 긴박한 위협에 맞닥뜨린 사람들에게 그들이 혼자 내버려졌거나 잊힌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생명선(lifeline)이 그들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