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 먼지 자꾸 오는데 … 학교엔 실내 체육 시설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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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 중인 언주초 학생들. 이날은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 야외에서 수업했지만 미세먼지 농도가 높을 때는 실내 체육관과 무용실에서 수업한다. 하지만 모든 초등학교가 이런 실내 체육 시설을 갖추고 있는 건 아니다. 강남 초등학교 31개교 중 12곳은 실내 체육관이 없어 야외 수업을 못하게 되면 체육실에서 간단한 활동을 하거나 교실에서 대체 수업을 한다. [김경록 기자]

중학생 자녀를 둔 박모(45·개포동)씨는 지난달 27일 집 근처를 지나가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 중인 학생들을 봤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이날은 그럴 수 없었다. 희뿌연 하늘만 봐도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한 수준이란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뉴스에서 이날 미세먼지 농도가 ‘약간나쁨’ 수준이라고 예보해서 어른인 나는 마스크까지 쓰고 외출했는데, 어린 학생들이 아무 보호 장비 없이 체육 수업을 하는 걸 보니 기가 막혔다”고 말했다.

 미세먼지 때문에 학교들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졌다. 예정대로 운동장에서 수업을 하자니 미세먼지가 학생 건강에 나쁜 영항을 끼칠까 우려되고, 그렇다고 미세먼지가 있는 날마다 체육 수업을 거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강남구 미세먼지 농도는 수업일수 21일 중에 ‘약간나쁨’이 4일, ‘나쁨’이 2일이었다. 사나흘에 한번은 이렇게 미세먼지가 심한데 그때마다 체육 수업을 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약간나쁨’은 어린이나 노약자, ‘나쁨’은 일반인도 무리한 실외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수준. 실내 체육관이라도 잘 갖춰져 있다면 문제될 게 없지만 대부분 학교가 제대로 된 실내 운동 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미세먼지 농도가 ‘약간나쁨’이었던 지난달 27일 강남구 초등학교 31곳 중 21곳을 조사한 결과, 언북초·일원초·세명초·대도초 등 18곳은 실내에서, 신구초·도곡초·개포초 등 3곳은 야외에서 체육 수업을 했다고 밝혔다. 실내 수업을 했다지만 대부분 시설이 열악해 강당에서 간단한 놀이를 하거나 아예 교실에서 다른 과목 대체 수업을 한 곳도 있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유모(44·대치동)씨는 “학교 끝나고 학원 다니느라 따로 운동할 시간도 없는데 학교에서까지 체육 수업을 제대로 안하면 아이 체력이 떨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체육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것도 물론 문제지만, 미세먼지가 심한 운동장에서 아이들을 뛰게 하는 것도 문제다. 이날 야외 수업을 한 학교 가운데 신구초는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진 오후에만 했다”고 밝혔다. 개포초는 개별 학급 교사에 판단을 맡겼다. 6개 학급 중 3개 학급이 운동장에서 수업했다. 도곡초는 “미세먼지 농도가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해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알려왔다. 개포초 김홍균 교장은 “미세먼지가 심각한 수준인지 몰랐다”며 “앞으로는 각별히 주의해야겠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 대기환경정보센터는 서울시교육청과 강남지역교육청 등 각 서울지역교육청은 물론 서울시내 모든 학교의 담당 교사 2명에게 매일 오전 7시30분쯤 미세먼지 예보 문자를 보내고 있다. 서울시 대기환경정보센터가 ‘약간나쁨’ ‘나쁨’ ‘매우나쁨’일 때 예·경보 문자를 발송하면, 교육청은 각 학교 통합게시판에 외부 활동을 자제하라는 공지를 한다. ‘등산, 축구 등 오랜 실외 활동을 자제하고, 학교나 유치원은 실내 체육수업으로 대체하고, 천식 등 호흡기, 심폐질환 있는 학생에게 특별 고지가 필요하다’는 등의 내용이다. 하지만 교육청은 경고 역할 밖에는 못한다. 이표상 서울시교육청 체육건강청소년과 장학사는 “학교 체육 수업 실시 여부는 학교장 재량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며 “3월 중 체육 교사들 대상으로 ‘미세먼지 예·경보 행동요령’에 대한 연수를 실시한 것도 교사들에게 미세먼지 심각성을 알려주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봄 대기환경이 안 좋은 게 최근 일만이 아니다. 원래 3~4월에는 황사 때문에 야외 체육 수업을 하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더 큰 문제는 미세먼지가 황사처럼 한 철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미세먼지는 1년 365일 언제든 발생할 수 있고, 입자가 황사보다 훨씬 고운 초미세먼지는 피부나 혈액까지 침투할 수 있어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환경기상통합예보실 미세먼지팀 유정아 연구사는 “미세먼지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진 않을 것”이라며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 5차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초미세먼지 배출량이 2022년까지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기 환경 상태와 상관없이 체육수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실내 체육관 등 시설 확대가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강남에 있는 초등학교 중 각종 스포츠 활동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체육관(넓이 326, 높이 6m 이상)이 없는 곳이 많다. 현재 강남구에 있는 31개교 초등학교 중 체육관을 갖춘 학교는 19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학교는 교실 2~3개를 붙여 만든 체육장이나 체육실을 사용한다. 이런 곳에서는 체조같은 간단한 활동은 할 수 있지만 축구나 달리기와 같은 제대로 된 체육 수업은 하기 어렵다. 강남의 한 학부모는 “엄마들이 학교 시설 중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실내 체육관”이라며 “비가 오든, 미세먼지가 심각하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2017년까지 전국 초·중·고의 실내 체육실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우선 중학교를 대상으로 학교 내 유휴부지 등을 활용한 체육실 만들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스포츠클럽 활성화 방안의 하나다. 학교에서 사용하지 않는 교실 2~3개를 합치거나, 학교 건물과 건물 사이를 벽이나 천막으로 막아 실내 체육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거다. 이표상 서울시교육청 체육건강청소년과 장학사는 “지난해 서울시 내 383개 중학교 중 140곳이 이 사업을 통해 실내 체육실이 생겼다”며 “체육관 설립은 예산과 공간 확보 등에 한계가 있어 우선 체육실 확대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로도 체육실 설립을 확대해 나가는 것은 물론, 시설뿐 아니라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체육 프로그램에 개발에도 힘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전민희 기자
사진=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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