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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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노인이 되어 견디기 힘든 것은 육체의 쇠 약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헤어 벗어나 있는 고독감.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그 마음의 공 허를 이기지 못해 노인의 얼굴과 마음엔 더욱 주름살이 진다.
언젠가 서독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파트」에 혼자 사는 노인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결국 등기 물을 전하려던 우체부에 의해 뒤늦게 그 사실이 밝혀졌다. 한 인간의 생애에서 이보다 더한 비극이 있을까.
이런 이야기는 먼 나라의 일만이 아닐 것 같다. 일가를 거느리고 이민을 훌쩍 떠난 사람들, 「아파트」에 떨어져 사는 이른바 「핵가족」들, 고향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 노부모에의 문안은 어쩌다 편지 한 장으로 혹은 전화 한 마디로. 「유엔」이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의 노인인구는 50년대 초에 비해 10년만에 거의 5배로 늘었다. 우리나라의 노인인구도 점차 증가되고 있다. 지난 66년 현재 80세 이상의 노인은 2만8천명에 불과했다. 향후 10년 뒤인 86년엔 그 수가 7만4천명으로 거의 2.5배나 된다. 정년후의 노인들도 그만큼 늘어나리라는 통계도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노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어디 의지할 데가 없다는 것이다. 건강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호소들이다.
대체로 문명국가를 지향하는 나라들의 노인들을 생각하면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가 않다.
노인들은 어느 경우나 자신이 오랫동안 지켜 온 인생관을 쉽게 저버리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의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으며, 후 세대들은 여기에 적응하려고 한다. 따라서 노인은 완고한 존재로만 평가되고 만다. 노인들의 사고나 인생관은 이들에겐 도무지 불편하게만 생각되는 것이다.
이런 의식의 단절은 노인들로 하여금 체념적이고, 때로는 후회스럽게 만든다.
한편 사회의 눈도 노인들을 이미「끝난 세대」로 보려고 한다. 백화점엘 가 보아도 아이들을 위한 상품은 많아도 노인들이 눈길을 줄 곳은 없다. 「버스」를 타 보아도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노인을 차라리 외면하고 만다. 가정엘 들어가면 아무도 그에게 관심이나 따뜻한 정을 베풀게 하지 않는다. 그럴 후세들조차 이미 집을 나가 사는 것이다.
요즘 어느 노인 회는「가정논리정립촉진대회」라는 이색적인 집회를 열고 후 세대들에게 경종을 울려 주었다. 『노부모를 버리지 말자』는 이들의 구호는 모든 사람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 새삼 어떤 비장감마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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