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역 백신 맞으면 자폐증" 미국·캐나다 '괴담 홍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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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과 캐나다는 요즘 말 그대로 ‘홍역’을 앓고 있다.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올 들어 3월까지 캘리포니아에서 보고된 홍역 발병 건수는 49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4건에 비해 급증했고 40건을 넘어선 것도 2000년대 들어 처음이다. 캐나다는 더 심각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만 320건이 보고됐고 온타리오·앨버타·매니토바주 등 전국에서 홍역이 번져나가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2000년대 초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홍역 퇴치국가로 인정받았다.

 접종만으로 쉽게 예방할 수 있는 홍역이 기승을 부리는 건 접종을 하지 않는 이들이 늘면서다. 최근 북미에서 전염병처럼 번지는 ‘예방접종 반대 운동’ 때문이다. 보건 당국은 “때아닌 홍역은 접종률 하락 탓이고 접종에 반대하는 이들이 이를 조장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접종을 반대하는 이들은 “예방접종이 자폐증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발단은 1998년 영국 의사가 발표한 논문이었다. 세계적인 의학저널 ‘랜싯(Lancet)’에 실린 논문은 “자폐아에게서 홍역·볼거리·풍진 예방접종 때 투여한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며 접종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란셋’ 측은 면밀한 조사를 통해 연구가 비윤리적으로 이뤄졌고 데이터가 틀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10년에는 해당 논문이 틀렸다고 공식 발표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널리 퍼져 나간 오류는 수정되지 않고 부모들에게 잘못된 믿음을 심었다. 여기에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영화배우 제니 매카시 등 유명인들이 가세하면서 오히려 힘을 얻었다. 지난달 말엔 자폐아 비율이 늘었다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접종 공포는 더 확산됐다.

 논란이 계속되자 미국·캐나다 보건 당국은 “예방접종과 자폐는 상관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진화에 나섰다. 캘리포니아 보건 당국의 론 챕먼 박사는 “예방접종은 나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친구 등 주변 사람들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며 “접종 말고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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