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토돼야 할 하곡수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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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의 하곡과 추곡의 수매가 결정과정이나 비료가격 등 일련의 농정에서 엿볼 수 있는 정부의 자세는 이제 더 이상의 가격지지가 불필요할 만큼 우리의 농업기반이 충분히 안정되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다.
이런 인식은 잘못된 판단과 성급한 낙관을 기초로 하고 있다. 생산물량으로만 따지면 이런 판단과 낙관이 어느 정도 근거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미작에서 지난해에 3천만 섬의 기록을 넘겼고 맥작에서도 거의 자급수준에 이를 만큼 생산이 늘어난 점은 농정이 이룩한 성과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주곡의 이 같은 증산이 만성적인 외곡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과는 겨우 영글기 시작한 첫 열매들에 불과하다. 우리의 농업은 너무 오랫동안 뒷전에 방치됨으로써 그 기반은 아직도 취약하다. 겨우 얻어낸 열매조차 꾸준히 투자하고 가꾸지 않으면 곧 시들고 말 것이다. 그동안 재정적자와 「인플레」의 위험을 무릅쓰고 주곡의 가격지지에 열의를 보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 시점에서 곡가 정책을 다시 「보수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두 가지 문제가 해답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재의 주곡생산기반이 가격지원 없이도 장기적으로 안정을 구축해갈 수 있는가, 또는 현재의 주곡가격이 생산비와 적정이윤을 충분히 보장하는 수준인가의 문제다.
앞의 문제는 지난 수년간의 수매가 인상율과 생산실적을 비교하면 저절로 대답이 나온다. 두말 할 필요 없이 가격지지 폭의 크기가 생산실적과 직접적으로 비례하며 특히 하곡의 경우 이 같은 상관관계가 더욱 두드러진다. 이는 곧 70년대 이후의 주곡증산이 주로 고수매가에 주도되었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수매가정책의 후퇴는 곧 생산의 안정기반에 대한 가장 큰 교란요인이 될 수 있다.
또 하나 현재의 주곡가는 아직도 충분한 적정이윤을 보장하지 못할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생산비조차 보상하지 못할 경우가 없지 않다. 특히 지난해 이후의 격심한 「인플레」와 농용자재비의 가격앙등이 미맥작의 채산성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는 점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따라서 올해 하곡수매가를 10%인상으로 억제하려는 당국의 계획을 신중히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저수매가의 가장 큰 핑계로 내세워지는 양곡적자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올해만 해도 2천여억원의 세수잉여가 예견된다면서 굳이 양특적자를 생산자 부담으로 메우려는 생각은 옳지 못하다.
특히 하곡은 가격에 민감하며 주곡자급을 위한 전략곡종임에 비추어 적어도 주곡의 완전 자급과 어느 정도의 잉여가 생길 때까지는 계속 최소한의 가격지원이 필요하다.
하곡의 저가수매는 물가안정에도 도움이 안 된다. 보리쌀은 쌀 소비의 가장 대표적인 대체곡이다. 따라서 보리쌀의 완벽한 자급이 안 되는 형편에서 쌀소비 절약은 기대할 수 없으며 이는 곡가불안의 소지를 제공할 수 있다.
때문에 하곡수매가는 적어도 지난해의 인상률을 밑돌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 옮을 것이다. 이 경우에도 작년과 같은 외상수매는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함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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