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새와 당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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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신민당의 분쟁은 이제 법통시비에 접어들었다. 문제는 어느 편에서 더 유리한 법리를 제시하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다.
그 시비의 하나로 등장한 것이 당인. 이미 선관위에 등록되어 있던 직인과 일치하는 당인이 찍힌 문서를 접수시켰을 때 그쪽이 더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더러 있는가보다. 그러나 그것도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물론 직인은 꼭 한가지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하다 못해 인감도 유고시에는 개인신고를 하면 그만이다. 이번 신민당은 양측이 모두 그런 절차를 밟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옛날에도 임금의 도장이 문제가 되는 일이 많았다.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임금의 도장인 옥새의 향방이 가장 큰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흔히 도망을 가는 편에서는 미리 그런 것을 챙길 겨를이 없다. 신하들은 이럴 경우, 지체 없이 대비에게 그것을 전한다. 대비라면 선왕의 후비. 세상이 평정되면 대비는 그것을 임금에게 내놓는다. 새 집권자일 경우는 내놓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긴하다.
임금의 도장이라고 임금이 손수 주머니에 차고 다니는 일은 없다. 상서원이라는 기구가 있었다. 여기는 그 옥새를 보관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우리 나라에선 이미 고대의 부족국가 시대부터 이것을 사용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때는 요나라 등에서 우리 나라 임금에게 금인을 보내 그것을 사용한 일도 있었다. 고려 공민왕 때도 명나라에서 고려국왕지인을 만들어 보냈었다.
조선왕조에 접어들어 영조 때에는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 국새를 만들었다. 사대문서에 찍는 대보, 교서나 교지에 쓰는 시명지보, 통신문서에 쓰는 이덕보 등 그 종류가 10여 개나 되었다. 따라서 그 용도에 맞지 않는 인장은 효력이 없었다.
그러나 인장만이 모든 유효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역시 이것에도 유고가 있을 수 있으며, 이럴 경우는 제2, 제3의 유력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이른바 모든 공식회의에서 회의록 따위가 공신력을 갖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합법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직인도 그 자체만으로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며, 그 직인이 사용되기까지의 절차가 더 뒷받침되어야 한다. 직인만이 유효하다면 세상엔 재물을 훔치는 도둑보다도 도장만 훔치는 도둑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직인에 있지 않고 그 직인의 효능을 보강하는 도덕적인 논리에 있다. 모든 시비에서 도덕적으로 우세하지 않은 쪽은 결국 지고 말며, 또 진 셈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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