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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년 한결같은 싱글몰트 맛 비결은 ‘물+전통 제조방식’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글렌피딕 증류소의 전경.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12시간을 날아 영국 런던에 닿은 뒤, 환승해 북쪽으로 1시간여를 더 가 내린 곳은 스코틀랜드 에버딘 공항. 여기서 승용차로 또 1시간가량 시골길을 달려야 노란색 외벽에 ‘글렌피딕(Glenfiddich)’이라고 쓰인 증류소를 만날 수 있었다.

‘위스키의 성지(聖地)’라 불리는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지역에 터 잡은 뒤, 128년간 5대에 걸쳐 세계 1위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들어 온 이곳은 위스키 애주가들 사이에 ‘성지의 심장’이라 불린다.

증류소 안에 들어서자 누룩 냄새가 코를 찔렀다. 위스키 제조의 시작은 맥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을 틔우는 맥아(Malting)부터 시작된다. 이 맥아를 피트(Peat·이탄)를 태운 연기로 건조시킨다. 몰트 마스터 브라이언 킨스만은 “위스키 특유의 스모키한 향은 피트 연기가 배어 나오는 것”이라며 “피트 사용량이 많으면 보디감이 있는 묵직한 맛, 적으면 가벼운 스타일의 몰트 위스키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공장 내부는 열기로 후끈했다. 대형 스테인리스 탱크 안에 곱게 빻은 맥아와 함께 60~70도의 끓는 물을 부어 섞기 때문이다. 킨스만은 “이 과정에서 자체 당화효소에 의해 보리의 탄수화물이 당분을 머금은 맥아즙이 된다”며 “이 맥아즙을 대형 나무통에 옮겨 이스트(효모)를 넣으면 2~3일 뒤에 7~8% 알코올을 포함한 술덧이 된다”고 설명했다.

술덧(Wash)은 정제되지 않은 맥주와 같은데 이 액체를 구리로 만든 원뿔 모양의 대형 증류기로 보낸 뒤 끓여서 나온 증기를 응결시키면 알코올 도수 70도가량의 위스키 원액이 나온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이처럼 한 가지 재료(보리)로, 한 곳의 증류소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말한다. 여러 곡식을 원료로, 여러 증류소의 원액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상품화한 ‘블렌디드 위스키’와는 구별된다. 글렌피딕 제조사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의 글로벌 홍보대사 이언 밀러는 “커피에 비유하면 싱글몰트는 원두커피, 블렌디드는 믹스 커피”라며 “고소득층이나 고급 취향을 가진 이들 사이에 싱글몰트 소비량이 증가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렌피딕이 128년 한결같은 맛을 유지하는 비결은 ‘물’에 있다. 글렌피딕은 증류소가 처음 생긴 1886년부터 지금까지 스페이사이드 지역 청정수인 ‘로비듀’를 끌어다 쓰고 있다. 청정수로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은 제품명에도 숨어 있다. ‘글렌(Glen)’은 스코틀랜드 지역 고어(古語)인 게일어로 ‘계곡’, ‘피딕(Fiddich)’은 사슴을 뜻한다. 사슴이 뛰어놀 정도로 청정한 계곡에서 나오는 물로 만든다는 의미다.

상수원지 천연 상태로 철저히 보존
상수원 확보를 위해 윌리엄 그랜트 앤 선즈 측은 수원지 인근 6600만㎡의 토지를 구입해 자연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언 밀러는 수원지 매입을 “128년 기업 역사상 가장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스코틀랜드 내에는 과거처럼 ‘맛 좋은 물’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 증류소들이 늘고 있다.

증류주 원액은 오크통(캐스크)에 담겨 저장고에서 숙성된다. 오크통은 위스키의 맛과 향, 색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부분 위스키 제조사들이 외부 업체로부터 오크통을 사다가 사용하지만 글렌피딕은 오크통 제조공장을 별도로 운영하고 ‘공예 장인’들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이 역시 고유의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저장고 내부에 들어서자 위스키를 가득 부은 잔을 코끝에 댄 것처럼 향이 강렬했다. 알코올 농도 약 70도 상태로 오크통에 들어간 원액은 1년에 농도가 2도씩 떨어진다. 실제로는 증발하는 것인데 위스키 제조사들은 이를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증류소 내 강한 향은 천사가 마시는 잔의 냄새였던 셈이다.

저장 기간이 지난 뒤 병입해 출시할 땐 알코올 농도를 40도에 맞추기 위해 물을 섞는데 이때도 알코올을 만들 때 썼던 로비듀 원수를 쓴다. 원수와 병입수를 같은 액체를 씀으로써 맛을 균질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1988년 스카치 위스키 법령, 1989년 유럽 증류주 법규는 ‘모든 스카치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가 최소 40도 이상이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40도 아래인 저도주 위스키에 ‘스카치’라는 말을 붙이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렌피딕 증류소에는 46개의 저장고에 100만개의 오크통이 저장돼 있다.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기는 어렵다. 오크통 하나를 열면 대개 위스키 400병가량이 나온다. ‘100만×400’을 셈하면 저장량을 추산할 수는 있겠으나 가격을 매길 수는 없다. 오크통 개수보다는 연산(빈티지)이 가격을 좌우해서다. 50년산의 경우 국내에서 한 병에 2800만원에 팔린 적이 있다. 64년산(1937년 빈티지)은 지난해 미국에서 1억원에 팔렸다. 64년산짜리 오크통이 1개 있다면 개봉하는 순간 400억원어치가 시장에 풀리는 것이다. 몇 년산 짜리가 몇 개나 있는지는 윌리엄 그랜트 가문의 후손들과 일부 경영진만 알고 있을 뿐 철저히 대외비에 부친다. 이언 밀러는 “고연산 빈티지가 들어 있는 일부 저장고에는 고위 경영진 외에는 출입도 제한된다”며 “다만 가문의 경영 특성상 후손들을 위해 ‘매우 오래된’ 빈티지를 상당수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싱글몰트, 국내 고소득 전문직 선호 1위
국내 양주시장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출고된 양주는 185만692상자(1상자=500mL×18병)로, 전년의 212만2748상자에 비해 12.8% 감소했다.

업계 1위 디아지오의 지난해 ‘윈저’ 출고량은 62만9869상자로 전년보다 11.9%, 페르노리카의 임페리얼은 45만5307상자로 전년비 22.8%나 줄었다. 롯데주류가 수입하는 ‘스카치블루’의 출고량도 1년 새 16.5% 감소했다.

업계는 빅3 양주업체가 동반 부진한 이유로 먼저 경기 침체를 꼽는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맥주와 소주를 찾으면서 국내 주류시장에서 양주가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실제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맥주 출고량은 전년보다 4.1%, 소주 출고량은 3% 늘었다. 특히 경기 부진으로 접대문화도 달라지면서 룸살롱에서 소비가 가장 많은 양주들을 중심으로 매출 감소 폭이 두드러졌다.

음주 문화가 ‘폭음형’에서 ‘음미형’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다. 취하기보다 대화와 사교, 술의 맛과 향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인 양주 시장 침체 속에서도 고소득 전문직이나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진 계층 사이에는 싱글몰트 소비가 늘고 있다. 반면, 보드카·럼·진·테킬라 같은 화이트 스피릿은 스타일을 중시하는 젊은층 사이에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홍대와 이태원을 중심으로 싱글몰트 전문 바, 화이트 스피릿을 주스나 음료수와 섞어 칵테일로 마실 수 있는 클럽이 속속 문을 여는 것도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한다. 실제 지난해 국내 싱글몰트의 매출은 전년비 12%, 화이트 스피릿은 31%나 증가했다.

에버딘(스코틀랜드) 글·사진=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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