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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닥터] 심방세동 환자 2500명 급사 공포서 해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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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호 22면

김영훈 고려대 안암병원장은 지난해 말 김우경 고려대의료원장으로부터 병원장 직(職)을 제안받고 한동안 손을 내저었다. 전국에서 부정맥 환자가 몰려와 4∼5개월을 기다려야 첫 진료를 할 수 있는데 병원장이 되면 진료시간이 줄어 환자들이 더 오래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김 원장은 올해 1월부터 아시아·태평양부정맥학회 회장을 맡기로 예정돼 있었다. 회장직은 의사 3000여 명이 참가하는 학회를 열고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부정맥 치료법을 보급하며 앰뷸런스 시스템과 급사(急死) 예방 체계를 보급하는 일까지 이끄는 바쁜 자리다.

<20> 고려대 안암병원 김영훈 원장

김 원장은 결국 병원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원장에 취임했다. 그 뒤 그의 환자 일부를 후배 의사에게 맡기려 했더니 환자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는 결국 토요일에도 진료를 보는 방법으로 환자들의 요구에 부응했다.

김 원장은 1998년부터 2500여 명의 심방세동 환자를 전극도자 절제술로 치료한 부정맥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심방세동은 심장의 심방이 힘껏 박동하지 못하고 불규칙하게 빨리 뛰는 병이다. 국내에만 80만~100만 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극도자 절제술은 사타구니의 혈관으로 치료기구를 넣어 심장까지 보낸 뒤 정상적인 전기 흐름을 방해하는, 즉 불꽃이 튀는 부위를 지지는 시술법이다.

김 원장이 이 시술을 처음 도입할 때 동료 의사들은 “왜 무리수를 두느냐”며 핀잔을 줬다. 처음엔 재발률이 70%에 달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부적절한 치료라며 (보험) 치료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시술법을 갈고 닦았다. 지금은 발병한 지 2년 이하인 환자의 경우 95%, 2~5년 된 환자는 85%, 5년 이상 된 만성 환자는 65~70%가 김 교수의 시술을 받아 급사의 공포에서 해방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시술받은 심방세동 환자 가운데 상태가 나아진 사람에겐 모든 약을 끊게 한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할 필요가 없다면서 환자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불안해하는 환자에겐 “동네의원에 가서 심전도를 찍은 뒤 그 결과를 카카오톡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김 원장은 환자들이 보내온 심전도 사진을 수시로 체크하고 있다. 700여 명의 환자에게 일종의 ‘무료 원격 진료’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김 원장은 어릴 적부터 의사를 자신의 천직으로 생각하며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백마’ 태몽을 꾸고 김 원장을 낳았다. 김 원장은 ‘백마=흰 가운의 의사’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는 의대 본과 3학년 때 응급실로 실습을 갔다가 인사불성 상태에 빠졌던 부정맥 환자가 극적으로 치유되는 모습을 지켜본 뒤 부정맥을 평생의 전공으로 삼았다.

그는 93년부터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부정맥 환자를 돌봤다. 9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의 시다스 사이나이 병원 부정맥연구소로 연수를 떠났다. 그곳에서 밤새워 부정맥 연구에 매진, 한국인 처음으로 미국심장학회와 미국심장협회의 ‘젊은 연구자상’을 연거푸 수상했다.

김 원장은 지금까지 140여 편의 논문을 국제학술지(SCI)에 발표했다. 2008년엔 심방세동이 재발하거나 심장근육이 지나치게 두꺼운 환자의 심장내막뿐 아니라 심장 바깥쪽도 지져서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2011년엔 미국 휴스턴의 감리교병원 팀과 함께 MRI로 심장의 상처 조직을 확인한 뒤 혈관에 알코올을 주입해 난치성 심방세동 환자를 치료하는 신의료 기술을 선보였다.

지난해 7월 그는 국내 최초로 ‘24시간 응급 심장마비 부정맥 시술 시스템’을 도입했다. 부정맥 탓에 심장에 ‘전기폭풍(electrical storm)’이 불어 일반적인 전기 자극으로 소생시키기 힘든 환자에게 인공심장을 달아 생명을 살리는 시스템이다.

김 원장은 올해 1월 20일 병원장에 취임하면서 “고대 안암병원에 미국의 초일류 병원인 메이요 병원(Mayo Clinic)의 색깔을 입히겠다”고 선언했다. 요즘은 병원 도약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각계 인사를 만나고 있다. 또 이 병원 부정맥센터를 세계적 병원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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