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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나의 동경 나의 위안] 파열음과 불협화음, 그러나 묘한 흡인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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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9호 27면

타타르스탄 출신의 현대음악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5월 서울국제음악제에 참가한다. [위키피디아]

한적한 시골길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의 모습, 옛 소련 변방 타타르스탄 출신이라 생김새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더분하고 인정 많은 시골 할머니 인상 그대로다. 그러나 소피아 구바이둘리나(Sofia Gubaidulina, 1931~)는 지금 지구촌 현대음악의 중심에 서 있고 아마 미래에도 남녀 구분 없이 가장 영향력 있고 메시지 강한 작곡가로 남을 것 같다.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두 달 가까이 나는 거의 소음(?)에 가까운 그의 음악에 시달렸다. 몇 해 전 그의 음반 리뷰를 썼다는 인연으로 시작했다. 그의 출세작이자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바이올린 협주곡 ‘오페르토리움(Offertorium)’이었는데 당시 시간도 촉박해 그 음악을 잘 이해했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런 빚도 있어 구바이둘리나의 음악 이것저것을 다시 듣기 시작했는데 음악감상이라기보다 이건 차라리 고행이었다. 보통 참을성으로는 끝까지 버티기가 힘들다. 난폭한 파열음과 불협화음의 연속,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런 자문이 떠오른다. ‘너는 오직 즐거움만 찾아서 음악을 듣느냐?’ 이런 구절도 떠오른다. “아무리 극한 상황에서도 음악은 귀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음악은 듣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쓴 모차르트가 만약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나는 그의 음악 듣기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 음악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어떤 흡인력이 있다. 자꾸 듣다 보면 묘한 카타르시스도 느낀다. 그에게 끌리는 이유가 뭘까? 꽹과리·소북·목탁 같은 동아시아계의 다양한 민속악기를 잘 활용하는 특성 때문인가. 강렬한 타격과 괴이한 동물의 신음소리 같은 음향이 빈발하는 특이성 때문인가. 혹은 그가 밝히는 자전적 유년기인가. 이 세 가지 모두 해당되지만 마지막 유년기 이야기가 특히 마음에 다가왔다. 하늘밖에 바라볼 전망이 없었다는 척박한 유년기를 호소하는 개인사가 특히 마음을 끌었다. 종교 탄압의 공산사회, 무슬림의 아들임에도 완고한 무신론자이던 전기기술자 아버지, 꿈이 배제된 황폐한 환경에서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보다 풍요롭고 따뜻한 세계에 대한 열망이 꿈틀거린다.

5세 때 그는 교회당 벽화의 성상에서 그리스도 감화를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음악에는 그때의 열망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다. 그는 어릴 때 어른들에게 자기의 열망을 감추는 데 익숙했듯이 지금 그 음악에도 그 열망들을 뒤에 감추고 있다.

구바이둘리나의 작품은 워낙 방대하고 악기군도 다양해 단기간에 그 음악을 섭렵하기는 쉽지 않다. 창작 열정에서도 그는 동시대를 압도한다. 비올라 연주의 전범으로 군림하는 유리 바쉬메트의 연주로 ‘비올라협주곡’을 들어본다. 바쉬메트의 음반을 구입해 놓고 몇 해씩이나 방치했다가 최근에야 거기에 손이 갔다. 예상대로 시작부터 파열음과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살갗을 베어낼 것 같은 날카로운 현의 질주가 청각에 충격을 준다. 취객의 걸음처럼 심한 비틀림을 반복하는 솔로도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그나마 오케스트라의 점잖고 엄숙한 배음이 솔로의 난폭한 질주를 감싸주지 않는다면 더욱 듣기 민망했을 것 같다. 선율은 아예 없고 격정과 전율의 단절음이 반복된다. 이 곡의 초연자답게 바쉬메트는 진땀을 흘리며 격정의 연주를 보여준다. 쾌감과 조화와는 거리가 먼 이 음악이 전하는 메시지는 뭘까? 저마다 다른 느낌을 받겠지만 슬픔과 분노를 느낄 수도 있고 현대의 카프카적 불안과 부조리를 감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작으로 통하는 바이올린 협주곡 ‘Offertorium’은 앞의 작품에 비하면 한결 부드럽고 질서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헌정받은 같은 타타르 출신 기돈 크레메르의 열성적 초연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바흐의 잘 알려진 관현악곡 ‘음악의 헌정’이 모태가 되었는데 시작부터 바흐곡 서주 주제를 역순으로 재조립하고 음율도 완전히 변형시켜 놓았다. 구바이둘리나는 바흐가 자기 음악의 출발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다른 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거칠기는 하나 현악기군에서는 여전히 날짐승들의 아우성이 난무한다. 다만 구조가 아주 치밀하게 잘 짜여 있으며 후반에 가서 평온과 위안을 전하는 범상치 않은 솔로 선율이 등장해 작곡가의 넉넉한 품을 엿볼 수 있다.

고행이라고 썼으나 구바이둘리나의 모든 작품이 해당되는 건 아니다. 그에게도 장난스럽고 위트 넘치는 소품들로 연결된 ‘Musical Toys’, 활달하고 감칠맛 나는 템포의 매력을 선사하는 피아노곡 ‘Chaconne’, T. S. 엘리엇에 감명받아 그에게 바쳐진 노래가 포함된 ‘8중주곡’ 같은 이색 작품이 있다. 기타로 연주된 그의 짧은 ‘세레나데’는 충격의 파열음에 시달린 청자에게 가벼운 위안을 주기도 한다.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첫 방한 소식이 전해진다. 5월 서울국제음악제 무대에 주빈으로 선다고 한다. 소통과 평화를 강조하는 그의 음악이 이곳에서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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