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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실전 속의 무인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69호 29면

1973년 10월 6~25일의 제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은 이스라엘엔 재앙이었다. 이집트와 시리아의 기습으로 허를 찔린 데다 개전 첫날 긴급 출동한 전투기들은 적의 소련제 지대공미사일에 줄줄이 격추됐다. 당시 이스라엘은 440대의 공군기 중 102~387대(정보 출처별로 다름)를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리엘 샤론(총리를 지내고 지난 1월 11일 별세) 장군이 지휘한 143기갑사단이 수에즈 운하를 건너 역습하면서 간신히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이 전쟁으로 전력 핵심인 전투기 조종사를 숱하게 잃은 이스라엘은 이후 웬만한 정찰은 무인기(UAV)에 맡기기로 하고 개발에 전력투구했다. 그 결과 82년 레바논 전쟁 때 무인기는 기대 이상으로 활약했다. 이를 통해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 개전 초기 시리아 방공망을 초토화해 조종사 피해를 ‘0’으로 만들었다. 무인기로 사진·동영상 촬영은 물론 방공망의 핵심인 레이더의 전파도 추적한 덕분이다.

이스라엘은 활용 범위를 더욱 확대했다. 사례를 보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창설자로 자살공격의 배후 조종자로 알려진 아흐메드 야신(1937~2004)은 2004년 3월 22일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군 AH-64 아파치 헬기의 AG-114 헬파이어 공대지미사일 공격으로 숨졌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F-16 전투기를 상공에 보내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접근하는 아파치의 소음을 숨겼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입수한 목표물 위치정보를 무인기를 보내 확인한 다음 전투기와 헬기를 출동시킨 것으로 본다.

무인기는 흔히 훈련용 목표물이나 정찰용으로 개발과 활용이 시작되지만 기술이 축적되면 전투용으로 변신하는 게 상례다. 정보수집용 무인기에 공격 기능을 추가하면 정보 파악과 작전 실행 사이의 시간적 간극을 줄여 전투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인기로 적 위협을 파악한 뒤 전투기나 공격용 헬기를 보내 이를 파괴하려면 늦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스라엘은 2007년 5월부터 무인기를 동원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로켓 발사대를 수색하고 발견 즉시 파괴하는 작전을 벌여 왔다. 공격용 헬기가 하던 것을 작전의 은밀성·기동성·신속성을 높이기 위해 무인기로 작전도구를 변경했다. ‘현장 파악·판단·무력화’라는 무인기 작전의 원칙을 적용한다. 자국 방산업체 엘비트시스템스가 제작한 헤르메스-450 무인기에 국영기업인 라팔이 생산한 소형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대테러센터(CTC)는 2001년 9월 4일 무인기에 헬파이어 미사일을 장착해 표적 암살 작전을 펼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CTC는 2006년 이후 기관장의 이름도 ‘로저’라는 암호명만 공개할 정도로 베일에 싸인 조직이다.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서북 변경주 등 탈레반 준동지역과 예멘과 같은 알카에다 활동지역에서 무인기를 이용한 ‘표적 제거’ 작전을 진행해 왔다. 무인기는 파키스탄 남부 황무지에 있는 비밀 비행장에서 이륙하지만 조종은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작전통제실에서 이뤄진다. 글로벌 무인기 작전 시대다.

북한은 최근 무인기를 청와대와 백령도 상공에 침투시키는 도발을 했다. 우리도 무인기 전력을 강화해 수도권과 서해 5도를 겨냥한 북한의 장사포·방사포 대응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감시를 넘어 즉각 대응도 할 수 있다면 전쟁 억지력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 도발 시 적 지휘부를 제거해 전투능력을 무력화하는 ‘뱀 대가리 자르기 작전’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다. 무인기를 한반도 평화 지킴이로 쓸 생각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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