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의 향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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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야구의 고향은 미국 「뉴요크」주 「쿠퍼스타운」으로 알려져 있다. 1839년 이 마을에서 「애브너·더블데이」 소장이 안출, 최초의 「게임」을 했었다.
이것은 1907년 미국의 유명한 운동구 상인 「A·G·스폴딩」의 의뢰로 「내셔널·리그」회장인 「G·밀즈」가 위원장이 된 『「베이스볼」 기원 조사 위원회』에서 밝혀 냈었다.
그러나 30여년 뒤인 1939년부터 「쿠퍼스타운」 기원설은 의심을 받기 시작했다. 「뉴요크」 도서관의 「R·W·헨더슨」이라는 사람은 『야구와 「라운더즈」』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그 기원은 1750년 이전 영국의 「라운더즈·게임」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론 13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크리킷」이 야구의 선조라는 설도 있다. 이것이 「라운더즈」로, 다시 「베이스볼」로 발달했다는 것이다. 어느쪽이든 야구의 고향이 영국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야구가 대륙 아닌 섬나라에서 유래 한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야구를 두고 진취적인 경기라고 말하는 것도 일리가 있음직 하다. 이 경기는 「볼」을 될수록 멀리 울타리 바깥으로까지 쳐내는 것을 극치로 삼는다. 이른바 「홈·런」이 그것이다. 다른 구기들은 반드시 어떤 테두리 속에 「볼」을 집어넣는 것으로 「스코어」를 올린다. 또 경지가 이루어지는 테두리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볼」을 상대방에게 쳐내는 배구나 「테니스」도 역시 어느 테두리를 넘을 수 없다.
그러나 야구만은 앞을 향해 무한히 개방되어 있다. 「볼」이 「펜스」를 넘어 푸른 하늘을 뚫고 날아가는 광경은 더 없는 장관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 경기를 생각해 낸 영국인들은 후에 대륙으로 진출, 「아메리카」를 개척하고 또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었다.
우리나라에 야구를 전한 사람은 1905년 미국인 선교사 「길레프트」였다. 그 무렵 황성 기독 청년회 회원들이 이 경기를 익혀 시합을 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공개 경기는 1960년 2월 11일 황성 기독 청년회와 독어 학교의 경기. 이상재옹이 흰두루마기에 「캡」을 쓰고 시구를 했다. 1910년대에 들어서는 야구 「게임」이 평양·개성·안악·선천 등으로 번졌다.
야구는 다만 미국의 국구라는 이유로 공산 세계에서 자본주의 「게임」으로 백안시 당하고 있다. 그러나 74년부터 중공에서 야구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 필경 이들은 야구를 외교의 창구로 이용할 정치 「스포츠」로 개발하고 있는 것 같다. 74년 9월말 전국 선발의 7개 「팀」이 경기를 벌였었다.
신록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도 백구의 향연이라 할 야구 「시즌」이 화려한 막을 올리고 있다. 본사 주최 고교야구는 그 화려한 「팡파르」를 울려 주는 것이다. 야구 「팬」들에겐 즐거운 계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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