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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는 「뿔 없는 투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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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늘의 작가 상은 무엇인가. 오늘의 작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인간인가. 이런 문제에 대답하는 흥미 있는 특집이 최근 「프랑스」의 시사주간지 「누벨·옵세르바톼르」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작가상이나 작가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해답은 시대의 상황에 따라 항상 논쟁을 유발시킨 문제. 이 특집은 권위 있는 「소프레」 여론조사를 통해 현대 작가의 모습을 『뿔 없는 투우』에 비유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여론조사라는 객관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흥미 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55%의 「프랑스」들이 어느 한 작가의 이름도 지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문학의 본 고장인 「프랑스」에서 문학에 대한 무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당신은 생존 작가나 현재 쓰고 있는 어느 자가를 생각하는가』라는 설문에 무응답이 55%인 반면 나머지 사람들도 지극히 산만하다. 「바젬」 「크라벨」이 5%남짓, 그밖에 「말로」 「솔제니친」 「페이레피트」 「트로이야」가 각4%, 「사르트르」 「사강」 「기·데·카르」가 각3%, 「모리악」 「케셀」 「세브롱」 「드루옹」 「마레·조리스」등이 각 2%로 문학의 세계에서도 영웅은 사라졌다.
이밖에 「루이·아라공」과 추리작가 「조르지·심농」 및 작고한 「알베르·카뮈」 등 10명의 작가들의 이름도 미미하게 엿보였다.
세계가 한때 그토록 떠들고 연구 대상이 되었던 「누보·로망」은 향방조차 찾아볼 수 없다. 「아렝·로브그리에」 「미셀·뷔토르」 「나팔리·사로트」 등이 그런 사라진 작가들.
가장 위대한 작가는 과연 누구인가. 현대와 과거를 망라한 이 설문에서 67%가 「빅토르·위고」를 지적했다.
다음은 「말로」가 7%로 뚝 떨어져 있다. 「발작」과 「라·퐁텐」이 6%로 3위, 「사르트르」 「몰리에르」 「크라벨」 「데·카르」가 5%로 4위, 「바젱」 「라마르틴」 「카뮈」 「모리악」 「라신」 「졸라」 「트로이야」 「페이레피트」가 각 4%를 얻어 5위 「솔제니친」 「사강」 「보들레르」 「루소」 「세브롱」 「케셀」 「모로아」 「파뇰」 등은 2∼3%밖에 안됐고 「아라공」 「시몬·드·보봐르」 「헤밍웨이」 「셍텍쥐페리」 「펄·벅」 등 38명의 작가가 1%를 획득하고 있다. 이 설문에서도 입을 다문 사람들이 무려 40%.
역시 작고 작가 중에는 「위고」와 「발작」에 영광을 돌리고 있으며 현존 작가는 「말로」와 「사르트르」가 거목임을 입증한 셈이다.
이상의 조사에서 나타난바 대로 작가란 단순히 쓰는 자만이 아니며 흥미로운 이야기꾼은 더구나 아니다. 사회 개혁적 낭만주의의 「위고」나 19세기 「리얼리즘」의 천재 「발작」, 행동주의 문학의 「말로」와 현실 참여 문학 이론의 창시자이며 실천자인 「사르트르」가 첫째로 꼽힌 사실이 단적으로 입증한다. 그러면 도대체 『작가란 무엇인가』 『우리들이 사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38%), 『사상(또는 이념)을 생각하고 제시하는 사람』(23%) 등을 말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행동으로 이끄는 사람으로 정의한 것은 불과 6%에 불과했다.
이것은 바로 현대의 작가가 현실에의 도전에서『뿔 없는 투우』가 되는 근본적인 근거가 된다.
청년층과 야당적 인사들이 작가를 좀더 사회 현실적인 측면에서 그려보고 있으며 반면 노인·부인·여당 인사들이 몽상을 파는 상인으로서 작가를 보고 있는 것은 재미있다. 이 결과는 적어도 「프랑스」인들은 작가들에게 계몽적 내용을 더욱 요구하게 되리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그밖에 『작가가 가난할 때 우수작을 내느냐, 부자일 때 가장 잘 쓰는가? 또는 빈부란 중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설문은 흥미롭다. 중요하지 않다에 69%의 압도적 다수가 동의를 표시하고 있다. 『가난할 때』 잘 쓴다는 사람도 20%로 무시할 수 없으나 『부자일 때』는 3%뿐으로 역시 작가는 가난해야만 천재를 드러내기 쉽다는 생각이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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