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도 않고 결정한 납품 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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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매청은 정부가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법에 따라 독과점업자로 지정하고 그 제품의 가격인상신고에 대해 적정여부의 심사절차를 밟지 않은 「유니온·셀로판」으로부터 지난 1월 31일의 기준가격보다 10%가 인상된 가격으로 담배포장용 「셀로판」지 구매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정부기관이 앞장서서 정부의 물가정책에 역행하는 현장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지난 27일 열린 물가안정위원회에서는 가격인상을 신고한 대부분의 민수품목에 대해서는 1월 31일 선으로 가격을 환원시키기로 하면서 전매청이 구매한 「셀로판」지에 대해서는 이미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정확한 원가상승요인 유무에 심사는 뒤로 미룬 채 가격인상을 허용키로 했다는 얘기다.
이 같은 물가안정위의 결정은 다른 품목에 대한 일괄적이라 할 수 있는 가격환원지시와 종합해서 볼 때 정확한 자료를 근거로 합리성·공정성, 그리고 산업정책적 배려를 바탕으로 해야할 물가안정위의 심사자세에 자의가 개재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이 위원회의 권위에도 관계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매청이 구매계약을 체결한 것은 물가안정위의 회의를 불과 3일 앞둔 지난 24일이었다.
전매청이 체결한 구매계약내용은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사용할 「셀로판」지 7만 5백 권을 권당 10%가 인상된 1만 2천 6백 10원씩 모두 8억 8천 9백만원에 구입한다는 것. 기획원이 당초 물가안정위에서 밝힌 「환원조치」의견이 타당한 것이라면 인상 분만큼 국고손실을 가져왔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한편 이 문제에 대해 주무부처인 상공부는 가격을 인상해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고 전매청이 인상된 값으로 구매계약을 체결한 것도 상공부의 내락을 받았다는 뒷 얘기인 만큼 10%인상이 타당하냐의 여부는 앞으로 원가분석결과를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보다 문제는 관계부처나 물가안정위원회가 정확한 원가분석도 하지 않은 채 기업체의 생명이 달려있는 가격결정을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신성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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