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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국전심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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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 봄의 국전은 처음으로 공개심사제도를 채택, 호감을 사고있는 것 같다. 어느 부문에서는 최고 수상작을 뽑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해마다 국전의 최고 각광을 받아온 서양회화분야에서 우수작을 가려내지 못한 것은 서운한 일이다. 일찍이 그런 전례는 없었다고 한다. 필경 공개심사는 그만큼 심사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 것도 같다.
한가지 흥미 있는 일은 모든 심사를 「버저」로 처리한 사실이다.
능률을 감안한 편법이었을 것이다.
외국의 경우 그런 예는 없다. 이름난 국제전인 「베니스·비엔날레」를 보면 심사는 역시 토론위주다. 아무리 심사의 능률이 문제가 되더라도 작품마다 열띤 토론의 세례를 받는다.
물론 그 심사과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개된다.
심사공개는 어느 나라의 어느 공모전이나 같다. 「상파울로」전도, 「프랑스」의 「르·살롱」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현대미술관이 주최하는 「나카오까」(장강)전은 일종의 초대전 형식으로 운영된다. 그 심사위원은 일본인과 외국인에게 공동으로 위촉된다. 지난해엔 독일을, 올해엔 영국을 초대하기로 하는 경우 올해의 작품심사는 독일인에게 위촉된다. 별난 뜻은 없는 것 같지만, 심리적으로 자국의 작품수준과 비교하게 되는 미묘한 효과를 기대한 운영의 묘 같다. 역시 그런 심사의 과정은 공개된다.
10여 년 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최고수상자인 「로젠버그」는 많은 「가십」을 남겼었다. 출신국인 미국에서 외교적인 힘까지 동원되어 그의 수상이 결정되었었다.
대체로 어떤 상이든 후문이 따르기 마련인 것 같다. 국제미술공모전의 경우도 비록 심사방식은 공정한 것 같지만, 끝내는 국력과 심사위원의 입장이 많은 작용을 한다.
그 때문에 『예술을 타락시키는 것은 상』이라는 말도 있다. 순수한 예술적인 평가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의미도 된다. 심사의원의 인간적인, 혹은 예술적인 한계를 뛰어 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차라리 우리 국전도 서양화·동양화·조각을 한 「그룹」으로 묶어 그 가운데서 최고수상작을 뽑는 지금의 방식은 버리는 것이 좋을 것도 같다. 관직급의 상을 주는 것보다는 각 부문별로 우수작 몇 편씩을 뽑고 나면 시상에 대한 「가십」도 없고 훨씬 더 공정해 인상도 좋을 것이다.
작품심사의 공개가 국전의 진일보라면 시상제도의 개혁은 진이보일 것이다.
우리 국전은 그나마 봄·가을로 좋은 작품들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즐거운 행사이기도 하다. 기대가 큰 만큼 제도적인 개선도 점차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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