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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양자원조사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969년 7월 26일 우주인 「암스트롱」이 역사적인 달 착륙에 성공한 그 시간에 「프랑스」 해양학자 「자크·쿠스토」는 「얼류션」열도에서 가까운 바다에 연구선 「칼립소」를 띄워놓고 해저탐험을 하는 중이었다. 「쿠스토」는 육상의 전화선에 연결된 「칼립소」의 확성기를 통해서 「암스트롱」의 달 착륙을 실황중계로 들으면서 감격적인 순간마다 6백 「피트」 바닷속에서 잠수선 「미니서브」를 조종하면서 수중의 계곡을 조사중인 동료과학자 「레이먼드·쿨」에게 수중전파를 이용한 전화로 알렸다.
「쿠스토」의 위치에서 보면 「암스트롱」의 달 착륙과 「콜」의 잠수는 우주·지상·수중을 연결하는 과학기술의 승리를 주제로 하는 장엄한 「심퍼니」였다. 「쿠스토」는 「암스트롱」과 「몰」의 보고를 동시에 들으면서 바다가 인류의 「마지막 개척지대」(Last Frontier) 라는 확신을 한층 굳혔다.
바다는 이제 신비의 상징이 아니라 재화의 보고다. 19세기에 탄생한 해양학은 「히말라야」의 높이 만큼 깊은 해저의 계곡을 들여다보는 데까지 발전했다. 해양학의 실용적인 측면 하나만 가지고 보아도 바다 밑에 깔린 광석은 그 값어치가 최소한 60억「달러」에서 많이는 몇조「달러」까지 추정된다.
석유 하나만해도 지금의 총생산의 20%를 바다에서 캐고, 가격으로 치면 연간 5백억「달러」나 된다.
바닷물의 해저 온도와 표면 온도의 차이를 이용하는 발전은 1980년대 초기에 실용 단계에 들어가서 서기 2000년에는 몇조「와트」를 생산할 꿈이 익어간다.
바닷속의 생물은 지상보다 다양하고 종류가 많아 단백질 공급원으로 본격적인 각광을 받고있다.
해양법회의가 난관을 거듭하는 것도 바다는 보물창고라는 새로운 인식 때문이다.
70년대에 들이닥친 자원위기는 해저 광석에 대한 관심을 크게 자극했다. 바다광석은 해양학자들이 「MN」(Manganese Nodule)이라고 부르는 군감자 같이 생긴 시커먼 고체 덩어리에 들어있다. MN의 구성은 「망간」 25, 철 10, 구리 1·3, 「니켈」 1·4, 「코발트」 0·2라는 사실을 학자들이 계산해내고부터 일반회사들이 뛰어들었다.
MN은 영국의 탐험선 「첼린저」가 최초로 발견했지만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된 것은 지난 20년 동안이고 그것이 경제적인 가치가 인정된 것은 불과 5, 6년 전의 일이다.
「스크립스」의 「에드워드·골드벌」은 해상 면적의 3·5%가 MN으로 덮여있고 남서부태평양과 북태평양의 해상은 25내지 50%가 MN으로 포장되어있다고 말했다.
「스크립스」의 학자들은 MN의 매장량을 최고 10조t까지 보고 4, 5년 후에는 본격적인 채굴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특히 「스크립스」의 학자들은 MN에 「우라늄」이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을 크게 주목하고 있다. 「워성턴」대의 「리처드·스턴버그」교수는 MN의 매장량이 몇조「달러」어치라고 주장한다.
학자들은 「벨기에」의 「유니온뮈니에르」, 미국의 「케니코트」회사, 「캐나다」의 「인터내셔널·니켈」회사, 미국의 「로키트」회사 등 10여개 회사가 도합 5억「달러」이상을 MN 채굴을 위한 연구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현재 세계의 「니켈」생산량은 5백t인데 태평양의 MN속에 합유된 「니켈」만도 그 5만배가 되고 「코발트」는 지금의 1년 총 생산량 2만t의 10만 배가 태평양 바닥에 깔려있다고 「스크립스」의 「윌리엄·메너드」는 추정한다. 「스크립스」가 27만 5천「달러」를 들여 개발한 해상 「트랙터」는 MN채굴의 기술에 혁명을 가져왔다. 3km 해상을, 지상의 「트랙터」처럼 자유로 움직이는 이 차량에다 「바께쓰」나 진공소제기 같은 장비를 달아서 MN을 채굴하는 것이 보편적인 방법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MN채굴에 남은 문제는 경제성이나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바다 오염문제와 국가간의 관할권 분쟁이다.
【워싱턴=김영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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