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만의 남매재회에 무한의 가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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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햄」(「아마추어」무선사)의 간단한 교신이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36년 동안이나 헤어졌던 오누이의 상봉을 주선하는 가교가 됐다. 16일 상오 9시50분. 한국 「아마추어」무선연맹회원 임동윤씨 (32·서울용산구한강로1의66)를 찾는「콜·사인」 (호출부호=HM-1DH) 이 임씨의 귀를 때렸다. 교신은 우리말로 시작됐다.
발신인은 일본 「아마추어」 무선사인 재일동포 김태현씨 (48·복강현거주·「콜사인」-JA6YLB).
상대방은 몇 차례의 교신으로 잘 아는 사이.
가랑비를 ,뿌리는 일기불순 탓으로 교신하는데 25분이 소요됐다.
내용은 호출자인 김씨의 천지 조총련계재일동포 박기순씨(53·여·복강현거주)가 오는 28일 재일동포모국방문 성묘단의 일원으로 귀국하게 되는데 36년간이나 헤어졌던 오빠 박외경씨 (65· 서울중구회지동l가195)를 만나게 해 달라는 가슴 뭉클한 사연.
한국 「아마추어」무선사 연맹 규정상으로는 교신자가 제3자의 청탁을 받을 수 없게 되어있으나 임씨는 사연이 애절한 만콤 이들 오누이의 상봉을 주선하기로 결심한 것.
임씨는 그동안 모국을 방문한 재일동포들이 연고자를 찾지 못해 쓸쓸히 돌아간 사람들이 있는것을 보고 이들의 안타까움을 풀어 주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수소문 끝에 주소를 들고 찾은 박외경씨는 남대문시장에서 조그만 잡화상을 지키고 있다가『무슨말이냐? 기순이가. 돌아온다고!』라며 감격에 떨린 목소리로 말을 잇지도 못했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신안리 동촌이 고향인 박씨는 47년전 가난한 농사일을 걷어치우고 8남매의 장남으로서 부모와 함께 일가족 모두를 데리고 일본으로 갔었다.
공장직공·막벌이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다가 해방과 더불어 온 가족은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박기순씨는 결혼을 하게되어 일본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는 것.
서신연락도 15년전부터 끊겨 최근에는 서로의 생사조차 모르고 지내왔다는 것.
박씨는 『죽기 전에 못 줄 알았던 동생이 돌아온다니…. 제일먼저 고향에있는 부모의 묘에 성묘부터 해야겠다』며 생각지도 않았던 동생을 만나게 해 준 임씨의 손을 붙잡고 몇 번이나『고맙습니다』를 되풀이했다.
박씨는 서로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지 모르겠다면서「피키트」를 들고 공항에 마중 나가야 겠다며 때 마침 찾아온 손자들과 함께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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