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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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청명·한식. 조상의 묘를 찾는 마음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리야 없다. 사람마다 다를리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찾아드는 묘는 같지가 않다. 큰 것, 작은 것, 둥근 분묘, 네모진 서구형. 자손을 잘 두어 왕릉처럼 호화로운 것도 있고 풍화에 씻겨 보잘 것 없이 허물어진 묘도 있다.
조상에 올리는 상식도 자손이 잘 살고 못 살고에 따라 다르다. 비록 분향짐주는 같다하겠지만, 진설 되는 어육면병소수탕과는 각기 다르다.
그뿐이 아니다. 조문도 다르다.
『유세차…감소 고우』하고 『현고…』하는 격식이야 뉘 집이나 다를 바 없지만 이름 위에 붙는 칭호는 다르다.
보통은 『학생 부군』이라 한다. 학문을 닦은 사람이 학생이지만 벼슬을 못한 고인을 뜻하는 말도 된다.
요새는 정 3품도 대제학도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누구나 죽으면 학생 부군이 될 수밖에 없다. 또 『학생』이라 불려진다 해서 부끄러울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강산이 변할 만큼 세월이 흐르고 여러 번 역사가 바뀐 오늘에도 『학생 부군』이라 적히지 않은 맥들이 더러 세워지고 있다.
남편이 「학생 부군」이 아니라면 그 아내도 물론 『유인』이 아니다. 정부인이 아니면, 숙부인이 되고, 또는 영인이 된다.
옛 판서가 지금의 무슨 벼슬에 해당되는지, 옛 대제학이 지금의 어떤 관직에 맞는지는 몰라도 지금의 『고관대작』의 자손들은 어버이에 대한 효심 (?)에서 『학생 부군』이란 말을 피하는가 보다. 이래서 오늘의 사모님네는 죽어서까지 호강을 누리게 된다.
학생 부군이 아니라면, 묘에 따르는 부속물들이 모두 달라진다.
위신을 위해서도 달라야할 것이다. 상석·망두석·비석…. 모두가 「학생 부군」을 위한 것들 보다 비싸다. 비싼 만큼 호화롭다. 서민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 부군』 밖에 안 된다해서, 또는 묘가 초라하다해서 조금도 부끄러울 것은 없다.
묘의 호화로움과 효심은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만큼 호화롭게 조상의 묘를 꾸밀만 하다면 생전에 얼마나 효심이 두터웠겠는가. 오직 그것만이 궁금해질 뿐이다.
묘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뼘의 무덤에 놓은 꽃 한 송이에 맺힌 효심-.
언제까지나 어버이를 섬기고, 어버이의 유훈을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보는 한때. 이를 위해 무덤이 있고 시제가 있고 한식이 있는 것이다.
떳떳하게, 곧게 살아간 조상일수록 초라한 무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조상 앞에서 우리는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엎드려 절해야 한다.
먼저 마음이 있고, 그리고 무덤이 있는 것이다. 무덤이 먼저가 아니다. 또 한식 때만 찾아 드는 무덤이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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