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금난의 호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자금난을 호소하는 기업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 전적으로 업계의 엄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년 초면 보통 자금의 비수기인데 웬 돈이 그리도 필요한지 궁금하다면 그는 이미 기업가가 아니다. 오랜 불황 끝에 내다보이는 희미한 경기회복기미에 둔감할 수 없는 것이 기업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새해 벽두부터 은행에 몰려드는 자금수요는 결국 이 같은 업계의 경기 회복감을 집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경련의 조사로는 대부분의 기업이 전년보다 평균 30∼70%까지 시설을 늘릴 계획이라 하니 자금수요가 엄청날 것은 물으나 마나다. 지난 2월로 마감한 상반기 수출산업 시설자금과 기계공업자금 융자신청에 배정액의 4배가 넘는 치열한 경합을 보인 것이 그 단면의 하나라 하겠다.
수요증가가 번연히 눈에 보이는데도 돈이 없어 낡고 모자라는 기계설비를 고치고 늘리지 못하는 기업의 고심은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더욱이, 이번 달에는 지난해 법인세와 이익배당부담이 가중되어 운영자금까지 크게 쪼들리는 업체가 많을 것이다. 실제로 전체기업의 72%가 심한 자금난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 전경련의 조사다.
그러나 정작 돈줄을 쥐고있는 정부쪽 사정은 전혀 다른 것 같다. 물가안정을 위한 통화긴축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결의가 대단하다. 원칙에서 볼 때 우리는 통화당국의 이런 자세는 정당하다고 본다. 유동성의 적절한 규제 없이는 백가지「인플레」대책도 소용없음을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때문에 연20%증가라는 의욕적인 통화량 억제방침이 계획대로 실현되어 만성적인「인플레」압력이 크게 완화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긴축의 부담이 특정부문에 집중되어서는 안된 다는 점이다. 이점, 현행의 자금공급「패턴」에는 개선해야 할 몇 가지 문제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한정된 자금의 공급이 수출부문에 너무 편중되고 있다. 수출이 급신장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수출지원금융의 증가는 너무도 급격하다. 본원통화공급의 40%가 수출부문으로 몰리는 현상도 결코 바람직한 상태라 할 수 없다.
이처럼 수출에만 추가금융이 쏠리면 그만큼 내수산업의 자금난은 가중되기 마련이다. 현재 겪고있는 업계의 자금난은 결국 긴축에다 편중이 가세한 협공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주어진 여신증가폭을 유지하더라도 자금배분을 적절히 조절한다면 긴축의 부작용은 지금보다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통화당국의 정책적인 고려가 있어야 한다. 현행의 금융체계는 수출산업이나 대기업에 훨씬 유리하도록 짜여져 있기 때문에 다른 대책이 없는 한 여신편중의 폐단은 앞으로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은행대출이 막히면 자본시장에서 직접 금융으로 조달하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채발행이나 유상증자도 중소기업으로서는 불가능할 뿐더러 기채 전망이 확실하지도 않다.
결국은 사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되어 자금「코스트」를 높이게 될 것이다. 이미 5%까지 오른 시중 사채금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내수 산업의 자금난을 일부라도 완화하려면 현행 수출산업 지원부분을 줄여 이를 전용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 수출산업 쪽에는 이미 과열투자의 기미마저 있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조절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