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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과 패배감"…프랑화 파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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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프랑스」의 EEC공동변동환율제(스네이크) 이탈을 「파리」에선 커다란 좌절과 패배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 EEC의 전도에 대한 불안감도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솨르」지는「랑부이에」합의의 파탄, 「피가로」지는 「EEC의 새로운 패배」란 큰 표제로 우려를 표명했다.
「프랑스」의 이탈은 EEC의 내분과 후퇴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프랑스」의 EEC 「스네이크」이탈은 벌써 연초부터 예상되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경제력으로 보아서 평가절하를 하든지 「스네이크」로부터 이탈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일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결국 「프랑스」는 평가절하보다 덜 치욕스러운 「스네이크」이탈의 길을 택한 것 같다. 「스네이크」의 이탈도 「프랑」화의 4∼5%의 실질적인 평가절하를 의미한다. 그러나 공식적인 평가절하가 아니기 때문에 훨씬 창피가 덜하다.
「프랑」화의 평가절하는 국제경쟁력의 저하를 자인하는 셈이기 때문에 국가의 위신이란 점에선 부끄러운 일이다.
과거 콧대높은 「드골」대통령은 경제적으로 평가절하를 안할 수 없는 입장에 몰려도 「프랑스」의 위신을 내세워 끝까지 버텼다.
평가절하는 환율인상으로서 「프랑스」의 물가가 상대적으로 많이 오르고 국제경쟁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프랑스」는 같은 EEC 「스네이크」실시국 중 경제의 열등생에 속한다. 세계적인 우등생인 서독과 상대적으로 비교되어 특히 그렇다.
EEC 「스네이크」는 EEC회원국 경제력이 어느 정도 비슷한 것을 전제로 한다. EEC「스네이크」는 세계적인 변동환율제 중에서도 EEC회원국 통화간엔 상하 2·25%의 변동폭을 유지하자는 것으로 물가상승이나 국제경쟁력이 비슷하지 않으면 이의 유지가 불가능하다. 환율은 곧 통화의 대외가치를 뜻하기 때문이다.
EEC 회원국 중에서도 경제의 낙제생인 「이탈리아」나 영국은 처음부터 EEC 「스네이크」에 가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프랑스」는 73년3월 EEC 「스네이크」가 실시될 때부터 참여했다가 도저히 서독 같은 우등생을 따라갈 수가 없어 74년1월 일단 이탈했다. 그러나 75년에 들어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7월엔 다시 EEC 「스네이크」에 복귀했다.
이때도 「프랑스」의 복귀가 너무 이르다는 여론이 많았지만 EEC 통화동맹과 공동보조에 도움이 된다는 정치적 배려로 「지스카르-데스텡」대통령이 단안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스네이크」에 참가하고 나니 「프랑스」가 여전히 경제적으로 서독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프랑스」가 EEC 「스네이크」에 재참가한 75년7월부터 금년 1월까지 도매물가 상승율은 서독이 1·5%, 영국이 6·6%, 「이탈리아」 6·2%, 「프랑스」 5·4%로 「프랑스」가 서독보다 3배가 넘는 「인플레」를 보였다. 무역수지 면에서도 「프랑스」는 75년 4·4분기 중(10∼12월) 8억7천만「프랑」의 적자가 났고 금년 들어선 1월 한달 동안에만도 9억2천만「프랑」의 적자를 기록했다.
물가가 많이 올라 수출이 안되고 수입이 늘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인플레」는 경기상승을 서두른 나머지 재정적자가 늘어나고 통화가 팽창한데 큰 원인이 있다. 「프랑스」의 무역적자 누증은 「프랑」화 평가절하의 압박으로 나타나고 또 절하가 임박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금년 1월 하순 「이탈리아」「리라」화의 폭락여파가 「프랑」화로 밀리기 시작, 2월 초부터 파란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EEC회원국, 특히 서독의 협조로 어떡하든 이를 수습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선 여전히 자국의 국익이 우선했다. 서독은 협조를 거절했다. 그 동안 통화위기 때마다 극성을 이루던 금융 투기사들이 「프랑」화를 내다 팔았다. 「프랑스」중앙은행은 이를 수습해 보려고 지난주(8∼13일)에 약15억「달러」어치의 「프랑」화를 사들였고 「프랑」화 투매가 절정에 달했던 13일 하루만에도 8억7천만「달러」어치의 「프랑」화를 매입했다. 그러나 결국 투기압력에 견디다 못해 「프랑스」는 「스네이크」이탈에 의한 실질적인 평가절하라는 고육책을 쓰고 말았다.
「프랑스」의 이탈로 EEC「스네이크」는 뒷바퀴가 빠진 반신불수가 되었다. EEC 「스네이크」중 상하 1·5%의 「미니·스네이크」를 실시하던 「베넬룩스」 3국도 「미니·스네이크」를 포기했다. 경제우등생인 「네덜란드」에 열등생인 「벨기에」가 도저히 보조를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이탈해도 서독 「베넬룩스」 3국 및 「덴마크」등은 여전히 공동변동환율제를 계속할 작정이라지만 EEC 회원국 중 영국·「이탈리아」·「프랑스」가 빠진 공동변동환율제는 별 뜻이 없다.
세계적인 변동환율제 속에서도 하나의 안정권을 유지하던 EEC 「스네이크」의 와해는 EEC의 전도뿐만 아니라 국제통화의 앞날에 파란이 많음을 예고하는 것이 있다. 이곳 「파리」에서 특히 패배와 불안감이 만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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