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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힌두교 유적지 마하발리푸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마드라스」시에서 남쪽으로 25㎞떨어진 「힌두」교 유적지인 「마하발리푸람」을 찾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류의 사원을 찾았지만 인도의 사원은 같은「힌두」교 사원이면서도 여간 다양하지가 않다. 이「마하발리푸람」사원도 「캘커타」나 이 밖의 「힌두」교 사원과는 다르다. 그러기에 이 나라 사원은 볼수록 불가사의한 친화력으로써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마하발리푸람」사원은 7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는데「7파고다」라고도 한다. 「5라타」(사당)라고 부르는 일군과 이 부근의 유적을 통틀어 「마하발리푸람」이라고 하는데 자연석으로 세운 독특한 건축이다. 그런데 「5라타」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는 커대한 바위를 안팎에서 쪼아 만든 것인데 조각들은 생명력이 넘친다. 이 사당들은 꽃으로 장식한 축제 차와도 같은 현상이나 본디 이 「라타」란 「수레」의 뜻으로서 「신의 차」에서「신의 집」, 그리고 신전으로 바뀌었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현재는 일곱 탑 가운데서. 바닷가에 서 있는 석조건물인「쇼어」사원만이 남아있을 뿐 나머지 여섯 탑은 바닷 속에 가라앉아 있다고 한다.
한편 「이집트」에서는「나일」강을 막아「아스완·댐」을 만든 때문에 아쉽게도 물 속에 잠기게된 고대 「이집트」신전들이 있지만 바닷 속에 잠겼다는 이 인도의 「마하발리푸람」의 여섯 탑은 매우 불가사의해 보였다. 그래서 사원관리인에게 바다에 참수하여 들어가 불 수 없느냐고 했더니 그런 설비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문득 「프랑스」「브르타뉴」의 전설을 그린 「프랑스」인상파 작곡가「드뷔시」의 최대의 걸작인 「가라앉은 사원』이 생각났다.
이 음악의 이야기는 사랑을 위하여 사원까지 가라앉게 한다는 슬픈 이야기지만 이 인도의 「마하발리푸람」은 어떻게 되었기에 바다에 가라앉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그래서 나는 이 사원 근처의 바다에 들어가 숨이 막혀 죽을 정도로 되도록 깊숙이 바다 밑으로 내려가 살펴보았다. 그러나 짠 바다 물로 눈만이 아릴 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나라 해녀라면 혹 찾아낼는지 모르나 나의 힘으로는 바닷 속에 가라앉은 신비의 사원을 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서운했다. 가공적인 용궁이 아니라 바닷 속의 사원은 최대의 관광자원일텐데 이런 것을 내버려두는 것은 한갓 전설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앙의 화신이라 할 인도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살피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일까. 내가 가라앉은 사원을 찾다못해 지쳐서 바닷가의 모래 위에 쓰러졌을 때엔 나를 미친 사람으로 보았던지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 사원에서 사귄 영국의 한 노부부는 자기들은 여행을 즐겨서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이 나라의 유적이나 사원처럼 크나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없다고 했다.
그 부인은『동양의 여러 나라가 다 특색을 지니지만 특히 인도는「유럽」이 갖지 못한 신비스러운 진리를 갖고 있다고 느꼈어요. 여생을 이 나라에서 보내며 많은 유적들을 다보고 죽으면 한이 없겠어요』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남편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당신도 그렇게 생각지 않으셔요?』한다. 이 늙은 부군은 『암, 그렇고 말고!』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얼마 전 「캘커타」의 영국식 건물인「빅토리아·미머리얼」에서는 같은 영국사람이면서도 이 나라를 식민지로 다스리던 것에 대해 어떤 속죄의식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이 사원에서 만난 이 노부부는 이 나라에 무한한 매력을 느끼고 인도의 위대성을 찬양하는 것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전부터『세계는 무대, 인간은 불상』이라는「셰익스피어」의 흉내인지는 모르나『이 세계는 도장, 인간은 수도자』란 여행의 「슬로건」을 지어서 내세우고 있었기에 이렇듯 훌륭한 영국의 노부부를 만나고 보니 새삼스럽게 여행이라는 것이 최대의 인간수업으로 생각되었다. 더구나 이 노부부사이의 사랑도 흐뭇하지만 세계를 사랑하고 관조하는 힘이 놀라와서「유머」로 『두 분께서는 이른바 세계 여행상을 받으셔야 하겠읍니다』했더니 무슨 뜻인지 곧 알아차리고 『그것 참 좋은「아이디어」군요』한다. 이런 대화가 다 여행이란 은총이 맺어주는 초시공적인 이웃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정말 여행은 모든 장막을 걷어치우고 세계를 융화시켜주는 힘을 갖고 있다고 본다.
영국사람은 실속을 차리는 공리주의자들인지 이 노부부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이『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좀더 보람있게 하기 위하여 이 유적을 연구해야 겠으니 이만 다시 만나기로 합시다』 하며 문헌을 끄집어 실제로 보는 것과 비교하기에 바빴다.
이런 끈덕진 학구열이 인도를 지배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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