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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피아니스트들에 대한 단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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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부장대우

피아니스트에 대한 로망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가령 이웃집 첫사랑 소녀의 전형적 이미지는 긴 생머리에 하얀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다. 남자라면 예술학교를 배경으로 한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주걸륜이 대표적이겠다. 음악 천재인 그가 학교 강당에서 쇼팽을 연주하며 피아노 배틀을 벌이는 장면이 유명하다.

 영화가 사랑하는 피아니스트들의 첫 번째 조건은 천재성이다. ‘호로비츠를 위하여’는 노처녀 피아노 강사(엄정화)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동네 꼬마를 만나면서 시작한다.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역시 천재성을 타고난 소년 음악가(프레디 하이모어)가 주인공인 ‘어거스트 러쉬’도 있다. 노력파 2인자 살리에리가 아무리 애써도 결코 모차르트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아마데우스’처럼 ‘예술가의 천재성’에 주목하는 영화들이다.

 ‘샤인’이나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감독)같이 실제 피아니스트의 일생을 영화로 옮기기도 한다. 역시 예술가의 광기나 남다름, 그리고 전쟁이나 살육 현장에서도 인간을 감동시키는 예술의 힘을 강조한다.

 영화 속 피아노는 에로티시즘의 도구로도 자주 등장한다. 여성 감독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에서는 말 못하는 여성(홀리 헌터)이 세상과 소통하며 성적 억압에서 벗어나는 출구로 등장한다. 건반을 터치하며 연주를 통해 상대와 하나가 되는 듯한 합일감이 에로티시즘과 맞닿아 있다. 미하일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연상의 독신녀 피아니스트(이자벨 위페르)와 대학생 제자의 파괴적이고 뒤틀린 사랑을 그린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서는 주인집 남자(이정재)의 피아노 연주를 하녀(전도연)가 엿들으면서 위험한 관계가 시작된다.

 최근에는 JTBC 드라마 ‘밀회’가 화제다. 역시 천재적 재능의 젊은 피아니스트(유아인)가 등장한다. 스무 살 연상녀(김희애)와 얽힌다는 파격적인 설정도 두 사람 사이의 예술적 공명이라는 것으로 설득력을 얻는다. 여기서도 두 사람이 함께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단연 화제였다. 같이 피아노를 치면서 빨라지는 호흡, 눈맞춤만으로도 에로티시즘의 절정을 보여줬다. 남녀 검객(강동원, 하지원)이 칼싸움하는 장면이 춤인 듯, 에로틱한 사랑의 행위인 듯 보여졌던 이명세 감독 영화 ‘형사’ 못지않다.

 안판석 감독이 워낙 클래식 팬이라 방송 내내 적재적소에 클래식 음악을 배치해 눈과 함께 귀까지 즐거워지는 드라마다. 음악과 영상을 어떻게 결합시키고, 음악의 느낌을 어떻게 시각화할지 교과서 같은 드라마이기도 하다. 매회 방송이 끝나면 삽입곡에 대한 문의가 잇따른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계의 치부를 까발리고도 있지만, 이 드라마 덕에 오랜만에 피아노의 매력에 푹 빠져본다면 그것도 좋겠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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