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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아침엔 신문, 오전엔 편지 배달 … 20년째 이웃의 '만능 해결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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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모스크바 419 우체국의 알라 첸초바가 오전 우편물을 분류하고 있다. [본인 제공]

모스크바 우체국 소속 419호 우체부 알라 첸초바(54)는 새벽 6시 출근한다. 신선한 뉴스를 담은 신문을 배달하기 위해서다. 벌써 20년째다. 출근길은 멀지 않다. 우체국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 1층에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우체부를 좋아서 시작한 건 아니다. 다 그렇듯 먹고살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어렸고, 연금으로 근근이 먹고살던 당시 마침 우체국에 자리가 났다.

첸초바가 사는 샤블로브카에는 11개의 아파트와 은행 그리고 공장지대가 있다. 이 공장 지역에는 45개 이상의 건물이 있고 그곳엔 회사들이 많다. 예전에는 어깨가방으로 배달했지만 지금은 청색 큰 자루가 달린 수레를 사용한다. 첸초바의 수레에는 신문이 많이 실린다. 그녀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보지만 모스크바 사람들은 여전히 신문을 많이 보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한다. 매일 나오지 않는 신문들도 있고 어떤 건 주에 한 번 발행되고, 때로는 잡지도 있어 어떤 날은 20개, 어떤 날은 30개의 출판물을 배달한다. 가장 많은 날은 금요일이다.

아침 우편물은 주로 신문인데 아침 7시에 모아서 한 시간 내에 배달한다(러시아에선 우체부가 신문을 배달한다). 특히 조간신문은 오전 8시까지 우편함에 넣어야 한다. 겨울이면 캄캄해 무서울 것도 같은데 그녀는 “동네 모든 사람과 집들을 훤히 알고 누가 몇 시에 출근하는지 혹은 몇 시에 학교에 가는지도 아는데…”라고 말했다.

오전 10시쯤 사무실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다시 나서는데 이때는 편지, 고지서, 통지서 등 개인 우편물을 배달한다. 바로 이 일이 그녀에겐 가장 중요하다. 그녀를 ‘애타게’기다리는 어르신들 때문이다. 대개 연금생활자인 이들 가운데 어떤 이는 우체국으로 전화해 “첸초바는 언제 오느냐”고 성화를 부리기도 한다. 그녀를 위해 특별한 준비를 하고 맞이하고 배웅도 한다. ‘대화’ 때문이다. 그녀는 “업무일정에 대화 시간이 잡혀있진 않지만 대화상대가 필요한 어르신들과 많은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걱정거리에 대해 듣고 충고도 한다.

새 잡지를 신청하기도 하고, 자기가 앓는 병을 말하면서 의사에게 가야 할지, 약국에 먼저 가야 할지 묻는다. 가족 일도 시시콜콜 얘기한다. 힘이 없어 나갈 수 없다며 아파트 관리비를 대신 내달라거나 수퍼에 들러달라는 부탁도 있다. 첸초바는 “우체부 업무가 아니어서 부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지만 소용도 없고…기꺼이 해준다”며 “노인들이 홀로 지내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혀를 찬다.

그렇다고 그런 게 싫다는 건 아니다. 첸초바는 “만나 얘기하는 게 즐겁다”고 한다. 동네 한 할머니 덕에 아마존산 커다란 녹색 앵무새가 그녀의 식구가 됐다. 앵무새를 돌볼 힘이 없고, 자식들도 싫어한다며 그녀에게 준 것이다. 첸초바는 그 할머니에게 갈 때마다 앵무새가 어떻게 자라고 놀고 있는지 말해준다. 할머니 가족은 앵무새가 그렇게 오래 사는 것에 놀랐다. 첸초바는 “새끼 족제비를 가져가라고 다른 어르신이 권했지만 처음엔 거절했다”며 “족제비가 앵무새를 잡아먹을 수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너무 귀여워서 데리고 왔다. 첸초바는 겸손하고 인내심도 커 보인다. 우체부라는 직업에 맞는 성격이다. 사회복지사이자 심리상담사, 심지어 간호사, 의사(?) 일까지 척척 해내는 첸초바, 그녀는 사랑 실은 우체부다.

아나스타시야 베르세네바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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