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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엄마'가 있는 가정교육센터로 … 러시아 고아원은 변신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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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육지원센터 №1에 들어온 아이들이 자기들이 머물 새 집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 모스크바시]

편안한 방, 현대식 부엌, 최신 집기들과 가득 찬 장난감, 공부용 책상. 방마다 몇 개씩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 이런 아파트를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게 좋아 보인다. 바로 고아원을 대체하고 있는 모스크바의 ‘가정교육지원센터’다. 2013년 모스크바에 총 5개가 등장했고 앞으로 12개가 더 오픈한다. 아이들은 보통 가정 분위기에서 생활하며 ‘엄마’도 있다. 친엄마가 아닌 ‘임시 엄마’지만 아무튼 아이들과 일주일에 5일을 같이 지내면서 진짜 엄마가 돼 간다.

예를 들자면, ‘엄마’ 나탈리야 치가노바(40)는 9명의 아이를 돌본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친권을 포기해 여기 왔거나 아니면 고아원에서 이리로 왔다. 여기서 형제자매들은 같은 방을 쓴다. 입양 부모를 찾을 때까지 보통 가정의 모습을 배우고 그런 분위기에 적응한다.

치가노바의 경험에 따르면 어떤 아이들은 힘들게 적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열고 적응한다. 뭔가 말을 시작하면 내면도 나누게 된다. 치가노바는 “아이를 돌보는 건 큰 책임감을 요구하기 때문에 임시 엄마는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고 말했다.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이 가정교육지원센터 №1을 찾아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근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이 이 가정교육지원센터를 방문했다. 시장은 “시는 고아를 위한 시설을 만들고 전문적인 직업교육을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했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8억 루블(약 237억원) 이상의 돈이 투입됐다. 15개 고아원을 리모델링했다. 그중 5개를 보육 및 위탁가정 선발 교육을 위한 가정교육지원센터로 바꾸었다. 위탁부모를 위해서는 10억 루블(약 296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모스크바시의 목표는 모스크바에서 고아원을 없애는 것이다.

2013년 가정에 위탁된 아동 수는 2012년보다 418명 늘어났다. 고아원 아동은 538명 줄었다. 소뱌닌 시장에 따르면 입양이 어려운 장애아동들은 기관에 남는다.

‘가정교육지원센터 №1’의 발렌테나 스피바코바 센터장에 따르면 지원센터는 건강상의 문제가 있는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받는다. 센터는 №57 고아원을 기반으로 만들었는데, 후에 ‘장애아동 치료를 위한 고아원 №1’이 통합됐다. 센터는 ‘장애’ 표기를 없앴다. 그러자 아이를 위탁받으려는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사실 모든 아이들에게 질병이 있는 건 아니다. 센터에선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이 함께 지낸다. 그렇게 하는 게 장애아동에게 좋고 입양될 가정에서 생활하기 위한 준비에도 도움이 된다.

모스크바시는 위탁가정 주택환경 개선을 위한 시범사업도 벌인다. 장애아동과 청소년을 위탁받는 가정엔 주택이 제공된다. 지금까지 20채가 제공됐다. 모스크바시 블라디미르 페트로샨 사회보호국장은 “올해 말로 100채까지 늘 수 있다”며 “현재 40개 가정이 참여의사를 밝혔으며 담당 전문가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문제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잦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고아원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지난해만 148명이다. 이는 현재 모스크바에 위탁부모를 위한 학교가 51개 있지만 모두가 남의 아이의 부모가 될 준비가 돼 있진 않음을 보여준다.

모스크바시는 또 친권을 포기하는 부모를 줄이려 노력하며 지역별로 결손가정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친권을 포기하는 부모의 수는 연 1500명에 가깝다.

게다가 가정교육지원센터 №1에는 나쁜 부모에게서 ‘구해 온’ 아이들도 있다. 이곳엔 그런 아이들이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잘돼 있다. 여기서 학교를 다니며 체육 활동도 한다. 또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빨래도 하고 센터 밖에서 친구들도 만날 수 있다. 보통 고아원이라면 그럴 수 없다.

그런데 지원센터 아이들과 자기 자식이 함께 놀 때 부모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발렌테나 스피바코바 센터장은 “특별한 것은 없다. 많은 부모들이 도와주려 하고 선물도 준비한다. 그러나 드물지만 불평하는 부모들도 있다”고 말했다. 불만은 센터 아이들과 놀더니 자기 자식이 나쁜 말을 사용하는 등 악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스피바코바 센터장은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그는 “센터 아이들은 평범한 아이들과는 다르다. 가정에서 받은 상처가 있고 부모를 잃었다. 애들에겐 아무 죄가 없다. 나는 내 자식 편들 듯이 아픔이 있는 아이들의 편을 들어주고 선생들에게도 그렇게 요구한다. 보통 아이 부모에게도 ‘부모가 지켜보면 쉽게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중요한 것은 학교생활에서 내 아이 남의 아이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아이들에게 민감한 순간을 빠르게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 일각에선 여전히 위탁가정을 의심스럽게 보는 시각이 있다. 엘레나 알샨스카야 국민의회 전문가이자 ‘고아지원 자원봉사자’ 재단 회장은 아직 성과를 말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이다. 그는 “고아원이 없어지길 바라지만 최근 진행되는 일은 시작에 불과하다. 러시아에는 끝까지 일을 추진하는 인내심이 부족하다. 1980년대에 지어진 가족 고아원, 1990년대의 입양가정 조치 모두 다 실행되지 못했다”며 “가정교육지원센터가 우선 노력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친가족에게 돌려보낼 수 있게 하거나 입양가정이나 후견자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아이들이 임시 엄마에 적응하고 친엄마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또 헤어지게 된다면 아이들에겐 큰 상처가 된다”며 “모든 것을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 선생님은 선생님일 뿐 아이가 가정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는 부모인 척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타티야나 수다코바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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