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영화제와 일본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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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는 6월 서울에서 열릴 제22회「아시아」영화제는 최근 일본의 갑작스런 문제제기로 그 전망이 어둡게 되고 있다.
일본 영화제작자연맹은 지난 6일 「아시아」영화제를 준비중인 한국영화제작자협회에 보낸 한 서한에서 일본영화수입에 대한 한국측의 확실한 보장이 없이는 서울에서 열리는 「아시아」영화제에 참가하지 않을 뜻을 비친 것이다.
일본측은 이 영화제가 창설된 지 20여 년이 지나고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진지도 10년이 지나 영화를 제외한 다른 모든 부문의 문화교류가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오직 영화부문에서만은 단 한편의 영화도 한국에 수출할 수 없었다고 지적, 그동안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영화제에 일본이 매번 참가, 협조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영화제의 목적이 회원국 상호간의 영화교류에 있는 이상 그 목적의 실현이 보장되지 않는 영화제에의 일본의 참가는 무의미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 같은 일본측 주장은 어느 모로는 물론 일리가 없지 않다.
「아시아」영화제는 「아시아」지역 회원국 사이의 영화교류를 목적으로 애초에 창설되고, 특히 지난 72년 서울에서 열렸던 제18회 영화제를 계기로 이 영화제의 성격을 일종의 견본시로 규정지은 것도 한국이었던 만큼 유독 일본영화에 대해서만 무한정 문호를 굳게 닫는 것은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면 「아시아」영화제가 영화예술진흥과 영화예술인의 교류를 통해 회원국 사이의 친선을 도모하는데 보다 큰 목적을 둔 것이라면, 순전히 상업적 이익 때문에 국가간의 우의를 해치는 일은 피하는 것이 정도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측이 박두한 영화제를 앞두고 새삼스럽게 영화수입조건을 내세워 참가거부를 무기로 삼는 것은 대국답지 못한 태도인 것만은 틀림없다.
일본측은 보다 신중하게 인국에 대한 우호와 협조 의사를 표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입장에 대한 이해없이 오직 이익 추구에 성급하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실상 한국이 일본영화 수입을 주저해온 것은 단순히 일본에 손해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일본측은 한국인의 대일감정이 어제오늘에 형성된 것이 아닌 깊은 단계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단층이 너무도 가깝고도 먼 양국관계의 굴곡을 통해서 항상 진폭되고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국교정상화 이후 이러한 단층은 상당히 메워진 것이 사실이지만, 영화로 말미암아 한국사회에 파급될 새삼스런 풍파를 우리는 진심으로 우려하는 것이다.
실상 일본이 지난 72년 서울영화제때도 참가거부를 시사하여 한국을 당황케 한 끝에 9편의 영화를 일반공개하여 한국진출의 기회를 타진했을 때도 여론은 심상치 않았었다. 문공부가 우선 배우교류에서 시작하여 점차 합작·문화영화· 극영화 수입까지의 단계를 설정한 것도 그런 여론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단계설정의 구체적인 진전을 보장함이 없이 무한정 일본영화수입을 기피한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이미 한·일간에는 여러 부문의 교류가 이루어져 온만큼 유독 영화만을 예외로 하는 것은 너무 근시안적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 우리측으로서도 우리 문화의 우위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문화교류문제에 있어 좀더 전향적인 자세로 이 문제에 임해야할 필요성은 절실하다.
물론 한국영화계는 아직도 한·일 교류에 평형을 유지할 만큼 건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일방적인 불리를 경계해야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그러나 국제관계의 현실을 그대로 외면만 할 수 없다면, 좀더 적극적인 대처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그런 만큼 이번 일본의 각박한 「조건」은 당연히 철회되어야 하겠지만 한국측도 보다 적극적이고 자신 있는 대응책이 기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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