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무원 제복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물자절약 운동의 하나로 공무원의 제복 입기 운동이 정부 일각에서 구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 무임소장관이 밝힌 바로는 이 운동을 실제로 벌이게 되더라도 강제가 아닌 자발적 운동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간편하고 검소한 복장을 하는 것은 물자절약이란 의도가 아니더라도 권장되어야 할 일이다. 이는 비단 공무원 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도 바람직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검소하고 간편한 복장을 한다는 것과 제복을 입는다는 것은 구별해서 생각해야 할 문제다. 제복이 검소하고 간편한 복장일 수는 있지만, 제복은 또 그 이상의 「이미지」를 풍긴다. 제복은 우선 상명하복이란 강력한 기율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강력한 규율이 요청되는 군대와 경찰이 전세계적으로 제복을 갖는 이유다. 제복은 또 소속집회에 대한 뚜렷한 귀속의식과 특유의 군중 심리를 갖게 해준다. 제복 착용자와 비 착용자, 또는 다른 제복의 착용자를 엄격히 구별하는 역할을 한다. 나와 남을 차별하는 기준이 된다는 얘기다.
군대와 경찰을 제외하고라도 사회적으로 일정한 제복이 멀리 퍼진 경우가 외국에는 적지 않다. 사회계몽기에는 사회개혁과 혁명의 열의가 흔히 규격화된 복장으로 나타난다.
5·4운동 이후의 중국, 10월 혁명 이후의 소련, 「간디」이후의 인도, 그리고 수많은 신생독립국에 이렇게 규격화된 복장이 널리 유행했다. 특히 전체주의 사회에선 규격화된 복장이 그 노선에 대한 충성의 「심벌」로까지 정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복이라고 하면 민주주의 사회에선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석연치 못한 느낌이 그동안 몇 차례 우리 나라에서도 부분적으로 시도되었던 국민복 입기 운동이 정착되지 못한 원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공무원의 제복 입기 운동이 자발적 운동으로 구상되고 있는 한에 있어서는 사회적으로 별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으리라. 그렇지만 아무리 자발적 운동이라 하더라도 일정한 제복을 입는 것만은 재고했으면 한다.
우선 군·경을 제외한 40만 공무원이 새로운 제복을 만든다는 사실만으로도 물자절약 운동의 취지에 어긋난다. 그 보다는 현재 갖고 있는 복장으로 검소하고 간편한 차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일반 국민과 차별되는 제복을 입게 되면 심리적으로도 일종의 선민의식이나 국민과 멀어지는 관료의식이 조장되기 쉽다. 이러한 의식이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는 공무원의 국민봉사 자세확립에 긍정적 영형을 미칠 것인가.
따라서 이 운동이 물자절약 운동의 일환이라면 공무원의 제복 입기가 아니라 간편하고 검소한 차림새 운동으로 추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 아니겠는가.
그뿐 아니라 이왕 검소한 기풍을 진작하는 운동이 전개될 바엔 전국민적 운동이 되어야 하며, 공무원은 이를 선도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국민의 검소한 기풍진작이 비록 물자 절약에서 발상 되었다 해도 이는 기본적으로 국민정신의 문제다.
따라서 이 운동은 산업 정책적 고려가 많이 작용할 물자절약이란 견지에서 보다 국민정신과 사회풍토의 순화란 정신차원에서 추진되어야 할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