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훈련병 고름을 빨았던 한주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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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4년 전 오늘 밤 9시45분, 백령도 바다는 새까만 어둠에 덮여 있었다. 검은 바닷속에서 검은 물체가 움직였다. 먼바다를 돌아온 북한 잠수함이었다. 검은 배는 검은 어뢰를 쐈다. 46명이 검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밤은 모든 게 검정이었다.

 전쟁 중이라면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전쟁이 아니라 평시였다. 젊은 장병 46명은 그저 근무 중이었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들이 그렇게 죽어갔다. 천안함은 검은 비극이었다.

 기자 생활 30년 동안 나는 수많은 사건을 목격했다. 그중에서도 천안함은 특이하다. 비극이지만 뜨겁고 공포스럽지만 전설적이다. 천안함이란 드라마에는 영웅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두 사람이다. 잠수하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와 북한 어뢰를 건져 올린 김남식 선장이다.

 신문에서 ‘천안함’을 볼 때마다 나는 한주호를 생각했다. 그는 어떤 인간인가. 어떤 인간이길래 그런 일을 할 수 있나. 며칠 전 나는 진해 UDT부대에 갔다. 해군 특수전 전단이다. 어둠이 깔리는 언덕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저격수 3인이 엎드려 총을 쏘고 있었다. 200m 앞에 휴대전화만 한 철판이 매달려 있다. “깡 깡” 총알이 철판을 때렸다.

 부단장 권영대 대령이 교관을 불렀다. 김원인 상사다. 그는 아덴만 해적 진압 때 허벅지에 총알을 맞았다. 그는 “걷는 데 불편은 없다”고 했다. 수십 년 동안 바람 부는 이 언덕에서 수많은 김 상사가 수없이 총을 쐈을 것이다. 그들은 홍대앞도, 강남역도 모른다.

 단장 오고산 대령이 UDT 역사관을 보여주었다. 한 준위가 입었던 잠수복이 있다. 고무 옷은 가위로 잘라져 동강 나 있었다. 오 대령이 말했다. “의식을 잃은 한 준위를 급히 산소치료기에 넣기 위해 잠수복을 찢었습니다.”

 4년 전 그날 천안함이 침몰하자 해군은 잠수요원들을 동원했다. 배를 수색하고 로프를 연결하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바닷속은 차고 탁했으며 조류가 빨랐다. 숙련된 잠수부라 해도 안전을 위해선 하루에 한 번만 작업해야 했다. 그런데 한 준위는 이틀에 네 번이나 들어갔다.

 사고 전날 저녁 한 준위는 지쳐서 침대에 쓰러져 있었다. 지휘팀장 권 대령은 다음 날 작업조에서 그를 뺐다. 권 대령은 회고했다. “밤늦게 일어나 명단을 보더니 한 준위는 몇몇 후배 이름을 지웠습니다. ‘얘들은 경험이 적어 잘못하면 사고 난다’며···. 그러곤 자기 이름을 넣었습니다.”

 권 대령은 1989년 UDT 교육을 받았다. 교관 중 한 명이 한주호 상사였다. 한 상사는 호랑이 교관이었다. 그런데도 훈련병들은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권 대령의 증언. “뻘에서 뒹굴면 상처가 많이 생깁니다. 제때 치료하지 못하니 곪기 일쑤지요. 한 상사는 훈련병의 상처에 생긴 고름을 입으로 빨아냈다고 합니다. 1992년 송원정 훈련병이 겪은 일입니다.”

 국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국가의 손끝에서 국가가 원하는 걸 만들어내는 사람들, 입만으로 떠드는 게 아니라 육체를 던져가며 실행하는 사람들···이들로 인해 사는 게 아닐까. 국가가 요구하면 해적을 사살하고, 검은 바다에 뛰어들고, 철모 끈에 불이 붙어도 K-9 자주포를 쏴대는··· 그런 이들로 인해 국가는 사는 것 아닌가.

 한 준위마저 죽어 국민은 슬픔에 잠겼다. 해군은 초조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증거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뢰 파편만 건지면 되는데, 그것만 있으면 북한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는데··· 그런데 그 어뢰가 보이지 않네···.

 해군은 쌍끌이 어선을 동원했다. 그물로 바닥을 훑는 어선이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인천 어선들이 연달아 실패하자 해군은 낙담했다. 그런 해군에 공군이 말했다. 부산에 대평호가 있다고. 대평호는 동해와 서해에서 전투기 잔해를 건져 올린 ‘전과(戰果)’가 있었다.

 그러나 베테랑에게도 작업은 어려웠다. 바닥은 돌투성이고 조류도 빨랐다. 대평호는 그물을 던지고 또 던졌다. 찢어지면 선원들이 새벽까지 고쳤다. 5월 15일 드디어 ‘발전기 같은 게’ 올라왔다. 어뢰 추진기였다.

 어뢰는 완전히 판을 바꿨다. 많은 나라 의회가 북한을 지목하고 규탄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상당수가 북한 소행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제1 야당 민주당이 대표적이었다.

 며칠 전 나는 김남식 선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민주당 지지자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민주당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어요. 어뢰로도 안 되면 도대체 뭘 더 건져야 한단 말입니까.”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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