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남기고싶은 이야기들(1519)|등산 5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엄동의 개마고원
북수백산 (해발2,522m)은 한반도에서 백두산·관모봉다음 세번째로 높은 산이다. 관모봉에서 서남쪽으로 아득하게 보이는 크고 육중한 산군이 두로산맥인데 그 우두머리가 북수백산(함남풍산군웅이면). 동계에는 아직 등반기록이 없는 처녀봉이라는데 이끌려 다음 등반대상으로 정했다.
북수백산 못미쳐 있는 차일봉(2,506m)은 35년3월에 경성제대 산악부가 동계초등반을 했었다. 한반도 어깨마루를 이루어 하늘 높은 땅이라는 뜻의 개마고대 주축이 함남 두로봉산맥이고, 북수백산은 그 남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엔 관북두메골로 이름난 삼수·갑산이 있고, 동쪽에는 풍산고을이 걸쳐있으며 서쪽에는 50만kw 수력발전으로 유명해진 인공의 부전호수가 있어 북한중공업 발원의 특이한 산수경을 이루고 있다. 이 일대를 부전고원이라하며 광표 1천평방km에 1천3백m이상의 높은 고원인데 북수백산을 으뜸으로 한반도 제4, 5, 6의 2천m이상 고봉이 20여좌있어 산왕국과 같은 곳이다.
40년 1월초 방현(「세브란스」의전)과 둘이서 여러 사람의 식량을 철도편으로 발송한후 선발대로 먼저 떠났다. 처음으로 규모가 큰 원정식등반을 하게 된것인데 「스폰서」는 일본인 석정달웅이었다. 35년 금강산동행 이래 산행에 자주 어울리게된 그는 큰 철공업소경영주로 성장, 적지않은 경비를 기꺼이 내놓았다. 그는 엄흥섭동지·김효중 (백령회)·일본대학생인 소천과 함께 뒤따라오기로 했다.
북수백산과 연화산으로 가려면 함흥에서 기차로 서너시간 걸려 송흥리로 간후 1천2백m높이의 부전령 도안역까지 「잉크·라인」으로 끌어올려지고 광대한 내륙고원호수 부전호를 「모터·보트」로 가로질러 (약16km) 호수의 북안 한대리를 거치게된다. 부전호일대는 여름이면 갖가지 고산식물이 화려한 꽃밭을 가꾸어 별경을 이루고 고원호수의 뱃놀이는 이국적인 낭만을 풍겨 빼어난 관광유원지가 되는 곳이다.
그러나 영하30도를 오르내리는 엄동1월엔 문명의 이기도 별수없어 고행길이었다. 함흥발 「미니」기차는 증기가 오르지 않거나 탈선해서 온종일 가게된다. 풍설에 얼어붙은 「잉크·라인」마저 고장투성이어서 기다리고 쉬다가 역시 하룻길이었다. 그래서 방현과 나는 서울서 함흥야행까지 합쳐 3박4일만에 간신히 부전호에 도달했다.
동결된 부전호에서는 다행히 조롱말썰매 (마요) 가 있어 40리빙호위를 2시간만에 주파, 부전산장까지 갈수 있었다. 그 중간 빙호상에 토막나무 주막들이 있어 불을 피우고 오가는 길손에 소주와 더운 고깃국을 팔고 있었다. 주모는 『엊그제 모진바람이 불어 이 주막들이 빙상에서 억지로 달음박질하다 하나가 곤두박질을 했고, 호반의 목조건물도 풍지박산했다』면서 조롱말 썰매도 바람에 역행이 되어 「잉크·라인」과 함께 운휴했었다고 말했다.
이같이 근대화한 교통시설도 자연의 폭위에는 맥을 못추어 엄동의 북수백산등반은 초입서부터 난항이었다. 그러나 산아래 발전소는 24시간 쉴새없이 가동하고 있었다. 부전산장뒤 고개하나 넘어 소한대리부락의 발전소현장사무실과 집집마다 전등이 환히 켜져있고 「라디오」가 들어왔다. 그 아래 좁아진 산협에는 부전호수를 가로막은 웅장한 「댐」이 있었다.
압록강으로 북류하는 부전강을 여기서 가로막아 반대방향인 개마고대 남단 1천여m 단애로 떨어뜨려 50만kw의 발전을 하고있었다. 일본은 벌써 근대화건설로 야구재벌로 하여금 이같이 험한 심산에 상상도 할수 없는 시설을 투입, 흥남질소공장을 비롯한 북한중공업화를 실현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산과 자연의 섭리를 이용한 웅혼한 구상과 시설은 새삼 인간의 왜소하고 위대함을 함께 실감케하였다.
부전산장에서 우리는 사흘을 머무르고 한대천∼운수령간 50cm의 적설을 「스키」로 오르내리며 눈길을 터놓았다. 그러자 엄오섭·석정일행이 도착, 합세했다. 북수백산에는 관모봉같이 산막이 없어 우리는 처음으로 극지탐험방식의 등반을 시도했다. 전원을 3개반으로 나누어 엄과 나는 「스키」로 전진, 눈 다져가기와 정찰을 하고, 방현과 석정은 천막설치, 김효중과 소천은 식량의 수송을 각각 맡았다.<계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