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 정치쇼 마라" 오사카 시민 6만 무효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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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모토 도루

‘1위 당선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현 오사카시장, 2위 백지(白紙) 무효표, 4위 항의 문구를 써넣은 무효표’.

 23일 치러진 일본 오사카(大阪)시장 재선거 순위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결과다.

 하시모토는 자신의 핵심 공약인 ‘오사카도(都) 구상’이 시의회의 반대로 벽에 부딪히자 지난달 초 민의를 묻겠다며 자진 사임했다. 그러고는 재선거를 치렀다. 선거비용만 6억 엔(약 63억원)이 들었다. 자민당·민주당 등 주요 정당은 “하시모토의 정치쇼에 놀아날 수 없다”며 아예 후보를 내세우지 않았다. 이름도 모르는 ‘잔챙이 후보’ 3명만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연히 결과는 하시모토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이날 선거에선 이색적인 기록이 세워졌다. 먼저 투표율 23.59%. 이는 역대 오사카시장 선거 최저투표율(1995년 28.45%)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직전 2011년 선거 때(60.92%)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임기를 1년 반가량 남겨두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선거를 왜 치르느냐”는 유권자들의 항의이자 ‘역(逆)심판’이었던 셈이다. 더 흥미로운 기록은 무효표가 전체 투표수의 13.53%인 6만7506표에 달했다는 것이다. 낙선한 세 후보의 득표보다도 많았다. 2011년 오사카시장 선거 당시 무효표는 0.69%에 불과했다. 기권보다 적극적인 유권자들의 심판이다.

 전체 무효표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4만5098표(총 투표수의 9.04%)는 어느 후보도 찍지 않은 백지 투표였다. 나머지 3분의 1인 2만2408표(총 투표 수의 4.49%)는 “(하시모토) 쇼 하지 마라” “세금을 소중하게 씁시다” “해당자 없음” 등의 글이 쓰여 있거나 큼지막하게 ×표를 적은 표들이었다.

 무효표를 던지기 위해 일부러 투표장을 찾은 유권자가 이처럼 많았던 것은 일본 선거 역사상 극히 드문 경우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24일 선관위 직원의 말을 인용, “이제까지의 선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무효표에 깜짝 놀랐다”고 지적했다.

 일본 언론들은 위안부 망언 이후로 궁지에 몰린 하시모토의 무리한 승부수가 화를 자초한 결과라고 일제히 지적했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 하시모토의 주장에 동조해온 우익 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마저 사설에서 “이번 재선거는 너무나도 난폭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결과에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24일 “비록 투표율이 낮았다고는 하지만 유권자들이 나에게 일종의 신임을 보내준 것은 분명하다”며 올가을 주민투표에 의해 오사카도 구상을 실현시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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