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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 2035

해외직구족의 역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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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내 남동생은 ‘해외 직구(직접구매)족’이다.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화려한 이탈리아 수제 구두나 특이한 무늬의 바지를 산다.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는 휴대전화 케이스를 자랑하기도 했다. 내가 심드렁하면 “이건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것”이라며 뻐겼다. 해외 직구의 장점은 싼 가격이다. 동생은 “배송비와 관세를 다 내도 30%는 싸다”며 한국에서 수입물건을 덥석 사는 건 ‘눈뜬 장님’이라 비웃었다.

 하지만 싼 물건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정작 해외 직구와 관련해선 눈뜬 장님이다. 그 세대 대부분에게 영어로 된 인터넷 사이트에서 물건을 골라 사는 건 초고난도의 미션일 터다. 그래서 해외직구족은 주로 2035세대다. 인터넷 환경에 익숙하고 어느 때보다 외국어 실력이 뛰어난 세대. 해외 경험이 많은 이 세대에게 특이한 디자인과 다양한 사이즈라는 선택의 폭은 매력적이었다. 언어와 공간 따윈 제약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주 이들은 제약에 부딪혔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내수활성화 기조가 해외직구를 규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국민들이 호갱님(호구고객)이 되고 있는데 해외직구 대책을 추진한다고?”, “해외직구 때문에 힘든 한국 유통망에게 책 ‘아프니까 세계화다’를 권한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해외직구족들에게 중요한 건 내수활성화나 나라경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다. 더 싼 가격에 최고의 제품을 구할 수 있는 자유, 이에 견주면 나라경제 걱정은 ‘ 유토피아’만큼이나 추상적인 단어다. 국가의 산업역군이 되기를 희망했던 엄마 세대와 “내수 활성화 때문에 더 싼 가격의 물건을 포기하라고?”라며 반문하는 우리 세대의 거리가 아득하다.

 조짐은 진작부터 있었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금메달 숫자를 숨죽이며 세는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의 금메달을 응원하고, 김연아는 김연아일 뿐 대한민국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보인다. 이들은 왜 국가를 응원하지 않을까. 국가와 개인의 ‘자력갱생’은 별개라는 진실을 너무 일찍 체감한 건 아닐까.

류정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