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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사랑으로 튀는 상품 만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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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주위에 흔하거나 남들이 대단찮게 여기는 것을 갖고 이리저리 궁리하다 보면 새로운 용도와 물건이 나오곤 하죠.”

‘건강 장작’을 창안해 농민들에게 쏠쏠한 소득을 안겨주고 있는 전남 장성군 생활민원기동처리팀장 변동해(邊東海·49)씨.

상가(喪家)가 생기면 공무원들이 찾아가 모든 걸 도와 주는 ‘장례 토털 서비스’를 창안해 전국에 확산시키기도 한 그는 농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남다른 아이디어맨이다.

1만㏊가 넘는 편백나무 숲이 깔린 장성군에는 간벌(間伐) 폐목들이 산에 버려지거나 땔감으로 쓰였다. 邊씨는 일본인들이 온천에서 히노끼(편백나무의 일본명) 탕(湯)을 즐기는 점에 착안, 문헌 등을 뒤져 편백 향이 머리를 맑게 하고 피부 미용 등에 좋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토대로 길이 30㎝ 가량씩 토막을 내 ‘건강 장작’이란 이름으로 팔자고 제안했다. 현재 편백나무 장작은 산림조합이 상자(20여㎏)당 1만5천원씩 상품화해 많게는 하루 열 상자 넘게 팔고 있다. 도시 사람들이 택배로 사 거실 등에 쌓아 두거나 따뜻한 물에 담궜다가 그 물로 목욕을 하는 것이다.

邊씨는 편백나무 폐목을 자른 뒤 기계 톱으로 긴 홈들을 내 ‘쿠션 목침(木枕)’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상품은 지역 축제 때 하루에 3백여개가 팔릴 만큼 호응을 얻었다.

“조상들의 삶의 지혜는 반 만년 동안 거르고 걸러진 것들이어서 당연히 요즘에도 통하는 게 많습니다.”

그는 숯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데도 선도적 역할을 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의 비밀이 숯에 있음을 알아내고 ^습도 조절^냄새 제거^전자파 차단 기능의 숯 활용 장식품을 만들어 보급한 것이다. 또 숯·솔잎 등을 속에 넣어 숙면과 피로 회복에 좋은 ‘건강 베개’를 개발, 1998년 전남 관광기념품 경진대회에서 특선 입상하는 등 숯의 가치를 재조명한 공로로 신지식인에 지정되기도 했다.

장성읍 내 일부 노인들이 3년 전부터 용돈벌이로 만드는 짚 카페트·방석도 邊씨의 머리에서 나왔다. 농사용 멍석보다 매끄럽고 촘촘하게 짜 천연염색한 광목을 씌워 거실에 깔거나 차에 싣고 다니며 야외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는 또 장성군 북일면 금곡마을에 버려진 창고를 수년 동안 고치고 방 바닥·벽에 편백나무를 덧씌워 쉼터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쉬었다 가라며 열쇠를 복사해 나눠 주고 있다. 열쇠를 받은 사람들은 별장을 가진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며 좋아한다고 한다.

이 쉼터 앞 개간지 2천여평에는 그가 2001년 중국에 갔다 견학 농장에서 챙겨 온 검정보리와 밀이 자라고 있다. 밀은 우유처럼 영양가가 높다고 해서 ‘신의 밀’이라 불리는 우수 품종으로, 이 종자를 농가들에게 보급할 작정이다.

그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올 정도로 유서가 깊으나 자취를 감췄던 죽로차(竹露茶·대나무 밑에 야생하는 차나무에서 딴 잎으로 만든 차)를 95년 재현했다. 한 해 한 번만 차잎을 따고 있다는 邊씨는 “차나무도 여러 번 잎을 따 혹사시키면 스트레스를 받아 차 맛이 제대로 안난다”고 설명했다.

농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한 그는 우리 옛 것에 관심이 많아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전국 각지를 누볐다. 특히 홍만선(洪萬選·1643∼1715)선생이 선조들의 일상생활 지혜를 정리한 『산림경제(山林經濟)』를 수없이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과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농사도 이젠 머리를 써야 합니다. 농촌이 살자면 무엇보다 농민 의식부터 크게 변해야 합니다. 농산물을 팔려고만 하지 말고 정(情)도 베풀어야 해요. 농사 지으면서 쏟은 정성과 농부의 심정 등을 글로 써 함께 포장하면 소비자가 느끼는 농산품의 가치는 훨씬 더 커질 것입니다.”

그는 농민들의 의식 개혁을 위해 개인적으로 최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을 금곡마을로 초청해 주민들을 상대로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농촌지역에 학교 선생이든, 목사든 누구나 농산물 판촉에 노력하는 등 농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촌이 지금처럼 인구가 계속 준다면 학교도,교회도 존립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공무원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선 “마음 먹기에 따라 돈 없이 농민들을 위해 사업을 할 게 많은 데도 예산타령만 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농촌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邊씨는 “농민들이 게을러져 농촌이 더러워지다보니 도시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며 “농촌 청결운동부터 벌여야 한다”며 쓴소리도 서슴지 않았다.

장성=이해석 기자
사진=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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