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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난 몰린 땅주인 협박 사업권 '접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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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조직폭력배들의 생존 방식이 각종 이권에 관여하는 이른바 '무혈(無血) 사업전쟁'쪽으로 바뀌고 있음이 이번 사건 수사를 통해 다시 확인됐다.

무일푼으로 이권사업에 뛰어들어 거액을 챙기거나 정치권 실세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로비스트 행세를 하며 돈을 뜯는 수법이다.

검찰 관계자는 "세칭 조폭들이 최근 건실한 사업가로 위장해 부동산 개발이나 사채.대금업, 연예기획사업 등 수익성이 큰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이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사건 주범인 폭력조직 출신 盧씨는 2000년 초 돈 한푼 없이 N쇼핑몰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쇼핑몰이 들어서는 땅 주인이 자금난으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접수'에 나선 것이다.

盧씨는 '조폭'출신임을 내세우며 협박, 손쉽게 사업권을 빼앗은 뒤 17억원을 댄 동업자도 폭력을 휘둘러 쫓아냈다고 검찰은 말했다.

한빛은행 지점장에게 뇌물을 주고 대출받은 41억원 중 20억원은 공사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나머지 돈은 전방위 로비자금으로 썼다. "거액을 쓰면서 사업도 술술 풀려나갔다"고 수사 관계자는 전했다.

한국토지신탁이 직접 자금을 투자해 시공토록 하는 계약을 한 데 이어 한국산업은행이 설정한 2백억원의 근저당권도 말소하는 등 사업추진의 장애물을 모두 제거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盧씨는 자신과 사업권을 놓고 경쟁했던 양은이파 부두목 白모(구속기소)씨를 제쳤다는 게 이 관계자의 말이다. 대신 盧씨는 白씨 등에게서 "지금까지 투자한 23억원을 물어내라"는 협박을 수개월간 받다가 결국 6억2천만원 정도를 뜯긴 것으로 수사 결과 나타났다.

검찰 관계자는 "정치인 등 유력인사와 교분이 있는 S파 전 부두목 具모씨와 정권 실세와 유착된 로비스트 鄭모씨를 통해 로비를 한 盧씨가 산업은행 측에 직접 로비를 시도한 양은이파에 판정승을 거둔 셈"이라고 설명했다. 盧씨가 로비 전략에서 이긴 셈이다.

서울지검 강력부는 지난 1월 초 유력한 정.관계 로비력을 바탕으로 이들이 사업 이익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이 쫓고 있는 로비스트 鄭씨는 구 여권의 핵심 실세와 절친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그가 붙잡힐 경우 정치권과 '조폭'간의 유착 여부가 드러날 가능성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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