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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봉양할까|유승국<철학·성균관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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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효는 부모를 섬기고 돌아가신 조상을 위하는 간성의 발로이다. 효행은 신체적인 「구체지양」과 부모의 뜻을 기리는 「공경」으로 일관하여 입신행도로 효의 끝을 삼는다. 효에는 세 가지가 있다. 보통 말하는 효는 「소행의 효」로서 집에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웃사람에게 공경하는 순종의 효다. 위로 하늘에 순종하고 아래로 만인에게 돈독하게 사랑하는 것은 「중행의 효」라 한다. 도를 따르고 군주를 따르지 않으며 의를 따르고 어버이를 따르지 않는 것을 「대행의 효」라고 한다. 즉 진리와 정의에 입각하여 행하는 것이라야 참다운 효인 것이지 무조건 복종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 것이다.
고대 씨족사회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유일한 도의관념은 가족윤리인 효라고 집약할 수 있다. 이 효사상이 고대 씨족사회로부터 부족사회로 변천됨에 따라 효의 개념이 국가수호의 정신인 충의 개념을 내포하여 효사상을 확대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부족윤리인 효가 국가윤리인 충으로까지 발전하는 것이라 하겠다.
예를 들면 신라의 화랑인 김영윤 관창 김흠운 등은 전장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를 발휘하여 목숨을 바쳤다.
충은 군주에게 성의를 다하는 것으로 여겨 신라의 화랑들이 세속오계 중에 「사군이충」이라 하여 충이 효보다 먼저 나오지만 군주에 대한 충의 기본개념은 그 근원이 효성에서 유래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충신구어 효자지문』이라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불효한 자가 충성할 수 없는 것이다.
광개토왕비에도 조상의 유업을 계승하는 것과 능묘를 잘 지켜 보존할 것을 부탁하는 문구가 나온다. 이 단상숭배관념은 유교가 전래하기 이전에 있어서도 한국고대인들은 부모의 상을 당하면 남녀가 모두 흰옷을 입고 슬퍼하며 패물을 차지 않았고 부인은 얼굴을 포로 가렸다고 하였다.
거상도 오래 하였고 석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는 고대 한국인의 조상숭배관념을 나타낸 유적이라 하겠다. 그리고 『삼국유사』에 나타난 바와 같이 신라의 김대성은 전세의 부모를 위하여 석불사를 짓고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지었다고 한다. 봉덕사종의 주조도 경덕왕이 부왕을 위해 시작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위대한 예술작품에 있어서도 그 동기는 효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효의 관념은 현대인이 말하는 바 현세적 가부장적 윤리라 하여 봉건사회에서 대가족제도에 적용되었던 특층사회의 윤리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 효에 관한 의미는 시대변천에 따라 달라져 왔음을 알아야 한다. 효는 본래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순수한 애정과 인권의 존중과 인간애의 체험을 부자간·모자간에서 느끼는 것이다. 「부자자효」는 천연한 인간본성인 선과 애의 노출이다. 그러므로 효라는 글자를 몰라도 효성은 없을 수 없다.
효자가 무엇이냐고 공자에게 물었을 때 답하기를 「무위」라고 하여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 것(불배한 이)을 강조하였다.
『거처함에 공경함이 없으면 효가 아니고, 군주를 섬김에 충이 아니면 효가 아니고, 관계에 있어서 불경이면 효가 아니고, 친구간에 신의가 없으면 효가 아니고, 싸움터에 있어서 용감하지 않으면 효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러한 효행은 책임과 성실로써 본래의 인간성을 발현하여 진리와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효행의 방법은 시대와 사회의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지만 효행의 근본정신은 언제나 불가변적으로 인간의 내심에 존재하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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