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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母性)이 천성(天性)이라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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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혼을 쏙 빼놓곤 천사미소로 무마하는 고은양. 목욕 후 샤방샤방한 그녀, 어떻게 미워할 수 있나.

아무도 보는 사람만 없다면 슬쩍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들.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가족’을 이렇게 정의했다죠. 처음 들었을 땐 ‘뭥미?’ 싶은데 자꾸 곱씹게 되는 말입니다. 온 사회가 한목소리로 가족의 소중함을 말하는 터라 가족에 대해 한 번쯤은 품어봤을 이런 마음은 밖으로 말하기는거녕 품는 것 자체로 죄를 짓는 기분을 들게 합니다.

모성(母性)도 그렇습니다. 아이를 버린 아빠에 대해선 ‘그럴 수도 있겠다’면서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아이를 버린 엄마에 대해선 ‘이해할 수 없다’거나 ‘용서할 수 없다’는 반응이 다수입니다. 모성은 천성(天性)인데 어떻게 엄마가 그럴 수가 있느냐…

고은이와 함께 100여 일을 울고 웃다 보니 엄마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성은 천성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더군요.

고은이와 함께 하다 보면 유난히 힘든 날이 있습니다. 어제가 그랬습니다.

별다방에 첫 외출한 고은양. 제발 울지만 말아다오.

고은이에게 차차 적응하다 보니 제 시간도 생기고, 고은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알 듯하고, 시크한 고은이가 때때로 천사 미소를 날릴 때면, 참 행복하다 … 싶더군요.

더구나 요 며칠 동네 별다방에 함께 외출해 고은이는 옆에서 자고 엄마는 육아에서 벗어난 듯한 망중한을 즐길 때만 해도, 이만하면 육아도 할 만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새벽부터 두 시간 단위로 깨어나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더니 한잠을 자야할 오전에도 잠은 자지 않고 칭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잠이 드는가 싶어 바닥에 내려놓을라치면 눈을 번쩍 뜨고 울어제끼고, 평소에는 좋아하는 유모차도 엉덩이를 들썩거리면서 앉기를 거부하고, 30분은 보고 만지고 놀았던 모빌은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더군다나 안고 있는 것만으로는 만족이 안 되는지 안고 일어나서 돌아다녀야 겨우 평온을 찾았습니다.

오후에도 상황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아기 수면이 도움된다는 각종 소리(이를 테면 청소기 드라이어 등)나 자장가를 찾아 들려줘도 씨알도 안 먹히더군요. 자는가 싶어 침대에 뉘어놓고 거실로 나와 한숨 돌릴라 치면 10분이 채 안 돼 울기 시작했습니다. 화장실에서 큰 일보다 자지러질 듯한 울음소리에 하던 일(?) 그만두고 달려가야 했습니다.

이 지경이니 신랑의 조기 귀가만을 염원하는데, 머피의 법칙인지 신랑은 또 야근이라더군요. 저녁에는 짜증이 피크에 달해 “고은이가 그러면 엄마가 힘들잖아. 고은이는 착한 베이비인데 그럼 안 되지. 자꾸 그러면 엄마 고은이 안 볼 거야.” 이러곤 고은이를 안고 같이 울었습니다. 말을 알아 듣는지 어쩐지 … ㅠ

더 울더군요.

10시가 다 돼 들어온 신랑에게 고은이를 던지듯 맡겼습니다. 녹초가 돼 고은이 얼굴 보기 싫어서 거실로 나갔습니다.

아 … 정말 누가 안 보면 갖다 버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거실에 한참을 앉아 TV를 보면서 멍 때리다 보니 고은이 사정이 궁금해 졌습니다. 안방으로 들어가니 아빠 품에 안겨 헤~ 하고 웃는 걸 보니 참 … 그게 짜증은 어디 가고 웃음이 나더군요. 언제 그랬냐 싶게 ‘오~오~’ 옹알이하면서 배실거리는데 이걸 어떻게 버리나, 싶더군요.

(동영상-목욕 후 기분 좋아 옹알대는 고은양)

원래 그다지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는데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이고, 말 안 통하는 것들과는 상종을 말자 주의인 제가 어떻게 아이를 키울까 걱정됐습니다. 그런 걱정을 내비칠 때마다 “모성이 어디 가냐”고 말들 하더군요. 모성은 천성이라고.

그런데 모성은 천성이 아닌 것 같습니다.

조리원 선생님들이 말하길 “아이가 엄마를 길들인다”고 하더군요. 그땐 흘려 들었는지 지금은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타고난 모성으로 고은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제가 고은이에게 길들여지고, 고은이는 저한테 길들여지는 거라고.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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