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공식 경로라도 문건 입수하라" 검찰, 국정원 직원 불러 대책회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34)씨를 구속 기소했던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가 지난해 9월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유씨 수사팀 요원을 전원 소집해 항소심 대책회의를 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회의를 소집한 검사가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할 중국 현지 문건을 확보해야 하니 비공식 경로를 통해서라도 입수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요청한 정황도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증거 조작 수사팀은 최근 문건 위조의 주범으로 지목된 국정원 김모(4급·일명 김사장) 조정관으로부터 이 같은 진술을 확보했다.

 국정원 과장급 이하 수사팀을 소집한 시점은 지난해 8월 22일 유씨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다. 당시 검찰은 유씨의 밀입북 혐의를 새로 입증할 출입국기록 입수에 나섰다. 김 조정관은 조사에서 “검찰이 공식 경로로 출입국기록 입수가 안 되니 비공식 경로로라도 입수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시기를 전후해 유씨 수사에 관여하지 않았던 내가 중국 전문가로서 문건 입수에 투입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당시 공안부 관계자는 “무죄가 선고된 뒤 수사 담당자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검사가 두 손을 놓고 있었다면 그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문건 입수에 투입된 김 조정관은 그해 10월 중국 현지 외부 협조자 A씨를 통해 허룽시 공안국 명의 출입국기록을 구한 뒤 검찰에 전달했다. 검찰은 이 기록을 항소심 재판부에 내고 공판 과정에서 “중국 정부에서 공식 입수한 기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정원 수사팀에는 “비공식 입수 기록이라고 유씨 변호인이 문제 삼을 수 있으니 선양총영사관을 통해 발급확인서를 받아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같은 해 11월 27일 오전 한 시간 간격으로 정체불명의 번호와 허룽시 공안국 대표번호가 각각 찍힌 동일한 발급확인서가 선양총영사관에 팩스로 도착했다. 검찰은 김 조정관이 “그 경위는 나도 모른다”고 진술함에 따라 누가 보낸 것인지를 캐고 있다.

 수사팀은 국정원이 제출한 증거문서 외에 유씨가 재판부에 낸 출입국기록도 위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할 방침이다. 중국 공안부의 출입국기록 추출 규정에 따르면 ‘중국 국민이 여권 등과 기록 발급 신청을 서면으로 제출할 경우 5년 내 출입국기록을 검색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유씨 출입국기록에는 1998~2013년간의 출입국기록이 한번에 담겨 있어 의혹이 일고 있다.

 한편 이날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김 조정관은 “김씨가 싼허세관 답변서를 입수해 오겠다고 먼저 제안해 동의했을 뿐 위조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사전에 알았다면 김씨가 검찰에 자진출석해 조사받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씨에 대해서는 “자살 암시 문자를 보낸 뒤 모텔 체크아웃 시간에 임박해 상처가 경미한 자살을 시도해 석연찮은 부분이 많고 이중스파이 등 각종 의혹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김승주 영장전담판사는 “혐의가 중하고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며 김 조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 적용 논란=검찰이 김 조정관과 협조자 김씨에게 형법상 ‘모해증거인멸죄’를 적용한 것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형량이 센 국가보안법 12조(무고·날조) 대신 형법을 적용한 건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봐주기’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저서 『국가보안법 해설서』를 인용해서다. 거기엔 “국보법 조항은 형법상 무고나 모해증거인멸 등의 죄에 대해 특별법 관계에 있는 만큼 이 조항의 요건이 충족되면 국보법을 우선 적용해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증거 조작 수사팀을 이끄는 윤갑근 검사장이 18일 적극 반박에 나섰다. 그는 “국보법은 ‘무고·위조죄’라 하지 않고 ‘무고·날조죄’라고 규정하고 있다”며 “적어도 형체는 있는데 비슷한 걸 만들어 내면 위조이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 날조라는 게 사전적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날조가 되려면 실체(출입국기록)가 거짓말이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아직 수사 중이라서 판명된 게 없다”고 강조했다.

박민제·심새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