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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의 추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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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공이 가장 우상화하고 있는 작가는 노신이다. 그의 <아q정전>은 중공이 중국의 근대문학 중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여기고 있다.
그가 25년에 학생운동을 일으키다 실패했을 때의 일이다. 그가 이끌던 학생대표들이 추석날에 다시 거사하기로 약속하고 뿔뿔이 헤어졌다.
한 학생은 몇 해만에 고향에 내려갔다. 마침 노모는 병들어 누워 있었다. 노모를 간호하던 그는 노모의 간청을 박정하게 뿌리칠 수가 없어 노모와 함께 추석을 지내고 돌아왔다. 학생들은 일제히 그를 면박했다. 중요한 혁명과제를 앞두고 정에 흔들렸다는 것이다.
노신은 조용히 학생들을 나무랐다. 모자의 정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추석을 노모와 함께 보낼 수 있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느냐면서 그 학생을 위로해 주었다.
다행히 그는 30년대에 죽었다. 만약에 그가 오늘 살아있었다면 숙청되었을 것이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중세기 때의 서양의 농사력에는 추석이 없다. 추석이란 중국과 한국에만 있는 명절인 것이다. 농사가 다르니 당연한 일이다.
서양의 농사력 그림에서는 오른쪽 최하단에 노인의 얼굴과 젊은이의 얼굴을 아울러 가진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것이 1월이다.
제일 상단에 6월과 7월이 있다. 이 때가 보리의 수확기인 동시에 가장 태양이 뜨거운 때다. 「크리스마스」의 12월은 왼쪽 최하단에 위치한다.
이런 서양의 농사력은 서양인들의 강렬한 사생관을 보여준다.
만약에 옛 동양사람들이 농사력을 그림으로 나타냈다면 아마도 추석의 음8월을 제일 위에 올려 놓았을 것이다.
우리네 옛사람들은 서양사람처럼 사생관이 강렬하지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을 서양 사람처럼 명확하게 잘라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았다면 동양사람은 무한한 시간의 흐름을 타고 살아간다고 여겼다.
이래서 추석이 본래는 조상들의 죽음을 재확인하기 위해 있는 날은 아니었다. 수확으로 푸짐한 오늘의 즐거움을 조상과 함께 나눠 갖고, 조상의 은덕에 감사드리기 위한 날이다. 그리하여 조상과 「나」와의 유대를 다짐해보는 날이다. 여기에는 죽음도 없고 삶도 없다. 그저 무한한 시간 속에 흐르는 정이 있을 뿐이다.
30년만에 어버이 묘 앞에서 흐느끼는 조총련계의 재일 교포의 모습이 있다. 1년 내내 푼푼이 모은 돈으로 노모의 속옷과 어린 동생의 운동화를 사들고 시골에 내려가는 소녀의 모습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추석 같기만을 바라던 옛날처럼 푸짐한 추석일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 나누는 정만은 푸짐한 추석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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