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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의 숙련된 봉제 기술자 재교육 통해 명품 장인으로 키워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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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호 16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개관은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남겼다. 동대문종합운동장 터를 파다가 123m에 달하는 한양 성곽과 함께 다양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DDP를 빨리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그 역사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건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앞으로라도 역사의 도시 서울 4대문 안에 대형 건물을 세울 땐 충분한 역사 유물조사와 건물 기능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동대문시장 잘 되려면

동대문 상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고, 주변지역과 어우러진 패션 문화 관광벨트 성장의 계기로 만드는 것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우선 주목할 곳은 창신동이다. 1970~80년대 서울의 모습을 간직한 이곳은 노후 주택 밀집 지역으로 보이지만, 지하 1층과 1, 2층에 많은 영세 봉제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대략 2000개의 공장이 존재하는 창신동은 동대문 유통시장과 연결된 산업단지다. 동대문상권이 패스트패션의 메카로 주목받는 것도 창신동을 비롯한 주변 지역과의 유기적 협업 덕분이다.

그러나 창신동 기술자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옷을 싸게 만드는 공정에 익숙해졌다. 동대문 상권의 발 빠른 디자인과 창신동의 숙련된 봉제 기술이 만났음에도 동대문 의류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하지 못하는 이유다. 따라서 앞으론 가격이 비싸더라도 최고의 품질을 보장하는 고부가가치형 생산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패션 선진국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장인 공방을 우리가 창신동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재교육이 절실하다. 숙련된 기술자이기에 어느 정도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명품 장인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현재의 여건으론 재교육이 쉽지 않다. 이들 대부분 하루 12시간 안팎의 노동을 하고 있기에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다. 하지만 누군가 공임을 후려치지 않고 적정한 수익을 보장해 주면서 일감을 주면 어떨까? 대형 종교단체나 유통업체, 정부기관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한다면 생산시간을 조금 줄이고 재교육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즉 ‘공정거래의류’(Fair Trade Apparel: FTA) 관련 운동이 산업과 시민 차원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산업차원 업그레이드 전략과 더불어 동대문 상권과 창신동 전체를 엮은 도시재생 프로젝트 역시 중요하다. 창신동은 주거환경이 열악한 소외된 지역이기에 외부의 손길이 필요한 지역이다. 그리고 그 매개체를 패션이라는 문화상품이 담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창신동에 패션과 봉제 산업의 역사를 기념하는 박물관이 존재한다면, DDP에 몰리는 인파를 창신동까지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에 DDP를 거쳐 창신동, 그리고 한양성곽을 올라 낙산, 그리고 그 넘어 동숭동으로 가는 인파의 흐름을 마주할지 모른다.

뉴욕 패션 중심지로 주목받는 ‘미트패킹 디스트릭트(Meatpacking District)’는 동대문 일대 개발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한때 고기 가공 공장이 모여 있던 이 지역은 지금은 멋진 레스토랑과 옷 가게, 부티크, 호텔 등이 즐비한 관광지가 됐다. 정육점 바로 옆에 옷 가게가 들어서면서 이 동네가 곧 패션타운으로 뜰 것이라고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비웃었을까. 창신동 봉제 골목도 언젠가 문화의 거리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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