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660억 피해 한수원, 1300억만 소송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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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조1899억원. LS그룹 자회사인 JS전선이 원자력발전소 핵심 부품인 ‘제어케이블’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뒤 180억원어치의 불량품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납품해 발생한 전체 피해액이다. 원전비리수사단과 한수원이 케이블 재구매 비용과 원전의 가동을 멈추는 기간 동안 전력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할 원료비, 원전의 준공이 지연돼 발생한 발전 손실액 등을 합산해 집계한 것이다.

 한수원이 이 같은 천문학적 손해 중 일부를 배상하라며 LS그룹 측을 상대로 낸 소송이 본격 가동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3부(부장 박평균)는 오는 24일 한수원이 JS전선과 시험기관인 새한티이피, 원전 비리에 가담한 임직원 7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차 변론기일을 연다고 12일 밝혔다. 이 소송은 원전 비리로 피해를 본 발전소 중 신고리 3·4호기에 한해 제기됐다. 한수원이 추산한 신고리 3·4호기의 피해는 불량 케이블 교체비용(약 969억원)과 전기판매 손실액(약 9691억원) 등 총 1조660억여원에 이른다. 하지만 일단 이 중 일부인 1300억원에 대해서만 청구됐다.

 한수원은 이와 병행해 지난해 5월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가 입은 피해액 중 케이블 교체비용(89억여원)과 전기판매 손실액 중 일부(1억원) 등 총 90억여원에 대한 소송도 진행 중이다.

 한수원은 단계적으로 소송 규모를 확대할 예정이다. 하지만 원전 비리에 핵심적으로 관여한 JS전선의 순자산 전체 규모가 1300억여원에 불과해 현실적으로 피해액 전부를 받기는 어렵다는 게 문제다. 한수원 관계자는 “알려진 규모 외에 더 자산이 있는지 현재 추적하고 있다”며 “하지만 숨긴 자산을 찾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현실적으로 전부 다 받을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수원은 물론 국민과 정부가 입은 천문학적 피해 규모에 비해 소송가액이 전부 인정되더라도 손해배상액이 너무 적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JS전선을 보유한 LS그룹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행법상 계열사가 입힌 피해에 대해 대주주나 모기업은 책임이 없다. 한수원을 대리하고 있는 진한수 법무법인 충정 변호사는 “주식회사의 법인격이 다르기 때문에 계열사가 입힌 피해를 대주주나 모기업이 책임지게 할 수는 없다”며 “JS전선을 상대로 얼마나 더 청구할 수 있을지는 한수원 측과 논의해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 해도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서 LS그룹이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LS그룹은 지난 1월 JS전선의 주식을 매수해 상장폐지한 뒤 사업을 정리하는 내용을 담은 원전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원전 비리와 관련해 꾸준히 문제점을 지적해온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JS전선 뒤에는 연 매출이 8조원에 달하는 LS전선이 있는데도 아무 책임을 묻지 못하게 돼 있는 법규정에 문제가 있다”며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계열사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보다는 도의적으로 피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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