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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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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비발디」의 「바이얼린」협주곡 『4계』를 듣고 있으면 갑자기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난조를 이루는 부분이 있다. 제2번 『여름』. 불길한 천둥소리, 하늘이 찢어질 듯한 비바람의 난무.
요즘의 날씨는 바로 그 난조를 연상하게 한다. 우리 나라의 기후도 인지반도처럼 우기와 건기가 뚜렷이 구별된다. 한반도의 여름 한 철의 비는 연 강수량의 50%, 좀 심한 지역은 60%가 내린다. 해안 지방은 대개 절반쯤이고, 내륙 지방은 연중 우량의 60%나 되는 비가 여름에 내린다. 임진강 상류는 좀더 심해서 65%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강원도의 이남과 남해 쪽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45%쯤. 그 나머지 우량은 고르게 4계로 분포되어 있다.
우리 나라의 여름비는 또 유난스러운 특징이 있다. 이른바 호우성 강수. 열대지방의 「스쿨」과 흡사한 비가 삽시간에 퍼붓는다. 어떤 지역은 하루 우량이 3백㎜나 되는 경우도 있다. 연 강수량의 4분의1이 하루 사이에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1시간 동안의 최다 강수량은 제주의 1백5㎜(1927년9월11일), 서울의 1백19㎜, 대구의 70㎜ 등 화려한(?) 기록들이 있다. 1964년8월8일엔 제천에서 2시간 사이에 212.4㎜의 호우가 있었다. 1926년7월11일부터 닷새 동안 서울에는 무려 1천68㎜의 비가 내린 적도 있다. 연 강수의 60%가 5일 동안에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다.
여름은 많은 비와 함께 또 길기도 길다. 기상학자「쾨펜」은 열대와 온대의 경계를 18도(C)로 삼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월 평균 18도가 넘는 달은 대개 6월부터 9월까지 4개월. 우리는 한 해의 3분의1은 말하자면 열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여름 못지 않게 겨울도 유난히 길어서 11월부터 3월까지 계속된다. 4계라고는 하지만 연중 9개월은 이처럼 추운 겨울과 무더운 여름이 차지해 버리고 있다. 그나마 쾌적한 봄·가을은 3개월뿐이다.
한반도의 여름은 이상하게도 남북의 차이가 별로 없다. 등온선을 보면 해안과 내륙의 차이는 있어도 남북 사이엔 4도의 차이밖엔 없다. 이런 현상은 여름의 기후가 겨울과는 반대로 대륙보다는 해양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여름의 월 평균 기온이 30도 이상인 지역은 대구와 강릉. 하지만 일 중의 최고 기온이 30도 이상인 곳은 거의 전국에 걸쳐 있다. 그것은 내륙지방이 더욱 빈번하다. 그러나 해안의 기온은 서울과 인천이 다를 만큼 차이가 있다.
여름도 지금이 한고비다.
삽상한 가을을 생각하면 어느새 날아갈 듯 가벼운 기분이다. 「비발디」의 협주곡도 『가을』은 피로를 씻는 달콤한 「멜러디」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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