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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계획과 예산제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민의 세금을 거두어 꾸려 나가는 나라 살림의 내용은 되도록 많은 국민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명료하고 정연한 체계를 가질수록 좋은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예산제도는 그 편성이나 집행 과정에서 예산이 지녀야 할 이같은 본질적 속성에 충실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다.
경제개발과 함께 국가예산이 갖는 경제적 비중이 더할 수 없이 커짐과 동시에 예산제도 자체도 복잡·다기하게 분화되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양적분화는 전체적인 통일성이나 체계화를 오히려 저해하는 결과를 빚어 갖가지 부작용을 파생시켜온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한국개발 연구원이 내놓은 한 연구보고서는 현행 예산제도가 지니고 있는 매우 중요한 문젯점들을 소상하게 지적하고 있어 큰 관심을 모을만 하다.
예산제도개선에 관한 이 보고서는 우리 예산의 문젯점으로 계획과 예산이 유리되어 있으며, 구조의 지나친 복잡성과 특계의 난립으로 종합성과 효율을 잃고 있는데다 세입·세출의 장기전망이 없음으로써 재정경직과 전년답습주의를 초래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들은 오래 전부터 개선의 필요성이 인정되어 오던 터이고 또 일부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고 있는 중이지만, 예산 못지 않게 경직적인 예산 당국자들의 보수적 편향으로 개혁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납세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예산의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는, 무엇보다도 정부의 재정활동을 한눈으로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통합예산이 작성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당연하다.
이 보고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 나라의 현행 예산구조는 일반재정·기업회계·특별회계 등으로 복잡하게 분화되고 있어 중앙정부 예산의 정확한 규모파악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다양한 특별회계도 원칙 없이 난립되어 자원의 낭비는 물론, 예산상의 적·흑자가 얼마인지도 짐작키 어려울 때가 많다는 사실은 하루빨리 시정되어 마땅하다 하겠다.
예산구조의 통·폐합으로 보다 정연한 통합예산 체제를 만드는 일은 그 기술적 애로와는 비교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장기재정 계획을 세우는 것도 「매너리즘」에 빠진 현행 예산편성의 기계주의를 불식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짐작된다.
이 보고서가 가장 역설하고 있는 계획과 예산의 통합문제는 그동안의 개발계획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하루빨리 제도화해야 할 문제임에 틀림없다. 경제계획과 유추된 재정계획은 상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예산편성이나 운용에서는 장기계획과 동떨어짐으로써 합리적인 자원배분의 기능을 잃고 있음은 현행예산의 가장 큰 맹점이라 하겠다.
예산제도는 물론, 계획제도도 현실적인 신축성을 유지할 수 있게 개선되어야 하며, 4차 계획에서 시도하는 연동계획 방식의 도입은 이점에서 하나의 진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여러 가지 제도 개선은 일시에 이룩하기 어려운 현실적 제약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각계에서 능률의 향상, 사회적 낭비의 제거를 위한 노력이 고조되고 있는 차제에, 국정운영의 기틀이라 할 수 있는 예산제도에서 이런 비효율적 요인을 줄이려는 제도개선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이 보고서가 결론짓고 있듯이 국가재정의 효율적 운용은 비단 예산제도에서 뿐만 아니라 조직·관리의 차원에서도 과감한 쇄신이 있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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