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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 숨지기 전 10분간 화장실 4차례 드나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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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SBS ‘짝’에 출연한 여성이 강요나 강압에 몰린 나머지 자살을 택한 것이 아닌지 본격 수사가 이뤄지게 됐다. 경찰이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5일까지 제주 서귀포시의 한 펜션에서 찍은 촬영 영상 전부를 SBS에서 받기로 했다.

 자살 사건을 수사 중인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SBS가 촬영본 전량을 제출키로 해 영상을 옮겨 받을 저장장치 5개를 방송사에 보냈다”고 10일 발표했다. 경찰은 “입수하게 될 영상을 바탕으로 강요죄 적용 여부를 집중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일 본인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촬영이 이뤄지는 바람에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면 강요죄를 적용할 수 있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앞서 경찰은 ‘짝’ 촬영 도중이던 지난 5일 새벽 펜션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전모(29)씨의 휴대전화 통화 내용과 카카오톡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분석했다. 여기서 “촬영이 힘들다” “방송이 나가면 한국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전씨가 말한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강요 여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제작진에게 혐의를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그러나 촬영 영상 분석에서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호남대 김문호(53·경찰행정학) 교수는 “촬영 과정에서 개인이 수치감이나 모멸감, 명예나 재산이 손상될 불안감을 느꼈는지가 핵심 중 하나”라며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대한 부담감으로 본인이 ‘그만 찍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도 계속해서 촬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면 강요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강요 혐의가 입증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강요죄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다수의 출연자와 제작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독 전씨에 대해서만 강요죄에 해당할 만큼 심한 압박을 가했으리라 보기 어렵다는 추정에 따른 것이다. 광주지방변호사회 강성두 공보이사는 “강요죄를 적용할 수 없더라도 방송사 측이 최소한의 출연자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한 점은 분명한 만큼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전씨가 숨지기 전 촬영한 2시간30분 동영상 내용을 공개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펜션 방에 SBS가 설치했던 카메라에 녹화된 것이다. 경찰은 사생활 침해 등을 고려해 영상을 직접 공개하지 않고 내용만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전씨는 5일 오전 0시50분부터 화장실을 4차례 드나들었다. 화장실 안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녹음되기도 했다. 오전 1시쯤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전씨는 오전 2시15분쯤 다른 출연자들과 제작진에게 발견됐으나 목을 매 숨진 뒤였다.

제주=최경호·최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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