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사먹고, 배달시켜 먹는 이 시대에 집 밥의 즐거움을 되찾을 방법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채인택
논설위원

결혼 5년차인 30대 초반의 맞벌이 후배 부부는 가스 요금이 0원에 가깝다. 부부 합의로 집에서 밥을 해먹지 않아서다. 자칭 ‘살림리스’ 부부다. 이들이 사는 방식을 들어봤다. “식사는 모두 밖에서 해결하죠. 점심은 따로 먹지만 저녁때는 수시로 만나 부부 외식을 즐긴답니다. 맛집 정보는 생활의 윤활유를 넘어 아예 필수품이죠. 커피전문점이나 편의점에도 맛깔스러운 샌드위치·샐러드·김밥·도시락이 즐비한데 굳이 시간 들여 집 밥을 해먹을 필요가 있을까요. 주말에는 배달음식이 최고예요. 세상은 넓고 배달시킬 음식은 질릴 틈도 없을 정도로 다양하더군요.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음식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고요. 참, 빨래는 대부분 세탁소에 맡겨요. 좀 민망한 건 드럼세탁기에 넣으면 건조까지 착 되잖아요. 우리 같은 부부가 주변에 은근히 많더라고요. 물론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말을 들으니 문득 옛날 할머니들이 떠올랐다. 그분들은 만능 수퍼맨이었다. 메주를 띄워 간장·된장·고추장을 담근 것은 물론 젓갈·김치·절임 같은 밑반찬도 손수 만들어 집안의 장독과 부엌을 책임졌다. 반찬·국·찌개 등 한식백과사전에 나올 거의 모든 음식에 손맛을 발휘해 맛과 영양, 그리고 사랑과 정성이 깃든 집 밥을 푸짐하게 차렸다. 하지만 이는 과거 농업중심시대 대가족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산업화가 진행된 지금, 집 밥이란 ‘아련한 옛 사랑의 그림자’가 될 수밖에 없다.

 영국인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자국 노동계급의 전형적인 집 밥을 이렇게 소개했다. “빵이 눅눅해지지 않도록 버터나 마요네즈를 바른 뒤 콩 통조림을 부은 샌드위치에 토마토와 감자튀김을 간단히 곁들인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싼값에 칼로리를 충분히 섭취하기 위해 개발했다더라. 영국인에게 맛있는 식사란 외식으로 먹는 외국 음식이다.” 집 밥의 추억이 나라별로 다르다는 뜻이다. 미국 농담에도 이런 게 있지 않은가. “저희 호텔은 고객들이 향수병에 걸리지 않도록 집에서 드시는 것처럼 토스트를 새까맣게 태워 드립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여성의 날(지난 8일)을 맞아 주요 29개국 집안일과 육아 등 가사노동에 대한 남성의 분담 시간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가장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불과 45분으로 평균치인 141분의 3분의 1도 안 된다. 가사노동이 이처럼 제대로 분담되지 않는 것도 물론 걱정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가사노동 자체가 아예 소멸하는 시대가 올까 봐 더 우려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성생활 실태를 담은 킨제이 보고서처럼 한국 가정의 식생활 실태를 담은 ‘집 밥 보고서’라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집 밥을 잃어가는 세대에게 건강과 추억을 되찾아 줄 방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 [분수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