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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발보상에 관한 대법원판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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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법원은 국가를 상대로 한 징발보상청구소송의 새로운 처리지침을 마련, 지금까지 3년 이상이나 법원에 계류 중이던 많은 미제사건들을 일괄 처리할 수 있게 했다.
대법원의 판결내용은 『징발보상금은 징발해제 당시의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사용료는 사용년도의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산정하되, 1년 거치·10년 분할상환의 징발보상증권으로 지급한다』는 것이다. 징발보상소송사건은 72년 유신총법을 제정할 때 경과규정을 두지 않아 그동안 대책 없이 4백15건이나 법원에 계류되어 왔던 것이다.
이 판결은 국가가 임대차했거나, 매매한 토지에 대해서 국가는 싯가대로 완전 보상해야 한다는 종래의 판례·해석을 뒤엎은 것으로서 임차료·매매대금을 시가대로 지급하기에는 국가재정 형편이 너무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는 하나, 법리상 또는 현실상 문제로 앞으로도 상당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주지된 바와 같이 징발재산의 보상문제에 관해서는 유신헌법제정(72·12·26) 이전까지 하급심 재판부가 구 헌법 제20조(『공공의 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에 따라 「정당한 보상」이란 「완전보상」을 뜻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해석, 징발보상금은 싯가를 기준으로 산출되어야 하며, 보상시기·방법에 대해서도 전액을 현금·일시불로 보상을 해야한다고 판시해왔다.
더우기 대법원까지도 이러한 판례를 지지, 67년11월 「징발재산보상에 관한 건」(대통령령)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려 완전보상의 입장을 취했었다.
그러나 구 헌법의 「정당한 보상」을 「완전보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합리적 보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정부·여당측은 유신헌법에서 『정당한 보상』을 『보상의 기준과 방법은 법률로써 정한다』는 조항으로 개체했었다.
그러면서도 유신헌법은 구헌법 조항에 의거한 징발보상금 청구사건 4백15건이나 법원에 계류 중이었던 이 사건들을 처리할 수 있는 경과규정을 두지 못했던 것이다.
당연히 법원은 법률불소급의 원칙 때문에 현행법규를 구 헌법 아래서의 행위에 소급 적용할 수도 없었고 구법의 조문을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는 「딜레머」에 빠졌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법리상의 타당성보다는 현실론에 가담한 입론이 대법원판사전원회의를 통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대법원이 『보상은 과세표준액을 기준으로 하고 지급방법은 징발보상증권으로 한다』는 개정징보법(72·12·26)을 원용한데는 이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번 판결에는 유신헌법 이전의 관계법률 조문을 형식적으로 열거했을 뿐, 「완전보상」의 입장을 취했던 종전 대법원의 판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피보상자보호 원칙」보다는 정부의 입장을 존중한 느낌을 준다.
법리문제를 떠나서라도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이 피보상자들에게 설득력을 지니기 어려운 것은 보상의 기준이 되는 부동산의 과세표준액이 싯가보다 엄청나게 낮게 책정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반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휘발보상청구소송의 이권성이 줄어들어 「브로커」들의 농간으로, 피보상자들에게는 실제는 극히 적은 보상밖에 돌아가지 않던 과거의 작폐가 근절되는 효과를 가져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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