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빗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어제도 내 친구 집 떠나가고
떠나간 자리에 눈물 고이니,
문 밖에 빗 하나 보인다.
빗 하나 크게 빛난다.
이 빗에 쫓기어 잘리운 손이
깊은 산에서 비로 내린다.
언제나 손님으로 문밖에 남아
금강석도 제 손인듯 그대
유유히 빗질을 하면,
그 손끝 마디에서 이승은
줄지어 놀뿐,
그리움은 저 숲속의 칼이다.
그리움은 그림자 곁에도 오지 않는다.
살리어다오, 살리어다오, 마침내
우리는 잠들지 않고
텅 빈 바다에 그대를 버린다.
그대의 온 힘을 바다에 메운다.
그러나 그리움은 만날 수 없고
문 밖엔 지금도 빗 하나 서 있다.
빗 하나 크게 빛나고 있다.

<노트>
나는 아직 그것(신의 빗)을 직접 눈으로 본 일은 없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은 느끼고 있다. 일순에 지나치는 바람인 듯 하면서, 때로는 형태조차 미미한 구름인 듯 하면서, 그러나 대쪽같이 곧은 그의 소행을 찬양해야 할지, 격노해야 할지. 나는 이 절대자적인 신과 인간과의 상충관계에 대하여 좀더 생각해 볼 작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