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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수사, 채동욱과 다르게 접근하는 김진태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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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진태(62·사진) 검찰총장의 리더십이 취임 석 달 만에 첫 시험대에 올랐다.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이라는 대형 사건에 연루된 대공수사국 직원들을 대상으로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다. 김 총장은 국정원 협조자 김모(61)씨의 자살 기도 이틀 뒤인 지난 7일 진상조사팀의 수사팀 전환을 지시한 데 이어 휴일인 9일 수사팀에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형사사법제도의 신뢰와 관련된 문제라는 엄중한 인식을 갖고 국민적 의혹이 한 점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라”는 메시지와 함께였다.

 김 총장의 선택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서울시 공무원 출신 피고인 유우성(34)씨의 유죄 입증을 위한 증거 조작이 대검의 감정 결과와 김씨의 자살 기도 등을 계기로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 대공수사국 직원의 지시로 증거를 조작했다”고 진술한 당사자다. 야당의 공세도 버거웠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은 9일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증거조작 사건 특별검사’ 임명을 여권에 요구했다. 야권은 이 사건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쟁점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은 9일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간첩 사건 책임자 처벌과 특검 도입을 촉구했다. 이날 회견 전 플래카드에 적힌 ‘간첩조작’이 ‘증거조작’으로 급히 수정됐다.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유우성씨가) 간첩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얘기”라며 “불필요한 공격 빌미를 없애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박근혜 정부 들어 검찰의 국정원 수사는 지난해 채동욱 검찰총장 때 댓글을 통한 대선개입 사건에 이어 두 번째다. 일단 김 총장은 채 전 총장 때 수사를 반면교사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댓글 사건과 증거조작 사건은 새 총장의 ‘1호 하명사건’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또 둘 다 시민단체나 정치권 고발로 시작됐지만 각각 대선, 지방선거 일정과 맞물리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차이는 있다. 댓글 사건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이하 조직 차원의 국내 선거개입 의혹이 핵심이라면 증거조작 사건은 대북 공작라인이 해외 첩보수집 과정에서 저지른 비위 여부가 수사 초점이다. 수사팀 구성 방식도 다르다. 채 전 총장은 취임 2주 만인 지난해 4월 18일 경찰이 댓글 사건을 송치하자마자 작심한 듯 공안부와 특수부 검사들로 합동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착수토록 했다. 전례가 드문 것이었다. 당시 특수·공안 간 잡음이 여과 없이 노출돼 조직의 내홍을 불렀다. 반면 김 총장은 유씨의 변호인단이 조작 의혹을 제기하자 ‘진상조사팀’을 먼저 꾸렸다. 이어 김씨의 자살 소동이 벌어지고 나서야 수사팀으로 전환(지난 7일)했다.

 특히 김 총장은 공안라인을 전면 배제했다. ‘특수·강력통’으로 분류되는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에게 지휘를 맡기고 ‘국제통’인 노정환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을 팀장에 임명했다. 댓글 사건 당시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의 ‘항명(抗命) 파동 사태’ 재발을 막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김씨 자살소동 직후 권정훈 부산지검 형사1부장이 수사 지휘라인에 추가 투입된 것 역시 지난해 댓글 사건 전개 과정에서 ‘쓴맛’을 봤던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의지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권 부장은 황 장관이 지난해 취임 후 첫 인사를 단행할 때 검찰과장으로서 보좌했다.

글=심새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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