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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비혼 가정, 제도적 지원 필요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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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최근 저출산이 이어지면서 미혼모 가정 등 비혼 가정에 대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혼외 출산 등 개방적 생활양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차별 문화 걷어내 저출산 극복할 수 있다

목경화
한국미혼모
가족협회장

한국에서 혼외(婚外) 출산 아동 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혼외 아동의 증가는 세계적 추세다. 2012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럽에서 혼외 출산 아동은 50% 이상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출산율은 바닥을 기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합계 출산율이 1.3명 미만인 상태가 2001~2012년까지 12년간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합계 출산율은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수를 뜻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처럼 초(超)저출산 상태를 지속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5년간(2006~2010년) 42조원을 쏟아부었으나 출산율이 올라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비혼 가정에서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온갖 편견과 빈곤에 시달린다. 아이를 혼자 낳으면 부모는 교육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고,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 아이를 스스로 키우는 비혼 부모에 지원하는 돈은 한부모 가족 수당인 월 7만원뿐이다. 이마저도 아이가 만 12세까지만이다. 이 때문에 비혼 부모가 아이를 버리고 있다는 뉴스는 끊이지 않는다.

 프랑스는 혼외 출산이 절반으로 늘어나자 2006년 혼인 가정의 출산과 혼외출산을 구별하는 규정을 폐지했다.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는 조건만으로 각종 수당과 휴가 등 혜택을 차별 없이 받을 수 있다. 프랑스의 출산율은 1993년 1.65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뒤 다시 1.99명(2010년)까지 상승했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기록이다.

 호주도 학교에서 비혼 부모를 위해 직업과 육아, 교육까지 지원해준다. 학교 옆에는 보육시설이 마련돼 있다. 무료 스쿨버스를 운행해 아이와 비혼 부모가 학교에 함께 올 수 있도록 한다. 산후 도우미를 집으로 보내주는 학교도 있다. 이 같은 정책에 힘입어 호주의 출산율은 2000년 1.76명에서 2010년 1.89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아이를 버리는 선택을 막으려면 정부 지원뿐 아니라 성(性)인지 인권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흔히 미혼모는 있는데 미혼부는 없다고 한다. 아버지가 아이를 낳고도 책임을 회피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것이다. 아이는 혼자서 가질 수 없다. 아이 아빠도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비혼 가정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인식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70) 전 대통령은 미혼모다. 핀란드 국민조차 미혼모가 과연 국정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그의 지지율은 80%에 달했다. 올해 칠레 대통령으로 당선된 미첼 바첼레트(62)도 선거 중에 가장 많이 따라 붙은 수식어가 ‘이혼녀’였다. 바첼레트는 편견에 정면으로 맞서 승리를 거뒀다.

 “미혼모가 되겠다”는 사람은 없다.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이 본인과 가족에게 충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불행은 아니다. 조금 어려울 뿐이다. 서로 사랑하고 믿고 지지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목경화 한국미혼모 가족협회장

가정의 특수성 무시하면 부작용만 커진다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
전 서울시 교육기획관

국가경쟁력을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구다. 우리나라는 출생률이 1.18명(2013년)에 불과하다. 국가의 미래에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혼과 출산 기피, 이혼 증가 등으로 결혼이나 가족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는 데다 높은 자녀 양육비와 불안한 일자리 등 결혼과 출산을 기피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은 적정 인구 확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11년 보고서 ‘미혼율의 상승과 초저출산에 대한 대응방향’은 “기혼 가정에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만으로 초저출산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주장이다.

 인본주의적 관점으로는 신선하고 개방적이다. 자발적 싱글맘, 즉 ‘싱글’과 ‘맘’의 좋은 점을 즐기는 비혼은 한때 선진국에서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임신 후 합의하에 헤어지거나 일방적으로 버림받아 혼자 남게 된 미혼모와는 다른 가족 형태다.

 하지만 비혼을 출산율 제고의 목적으로 장려하거나 지원하는 정책은 더 큰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살을 맞대고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 희생하고 양보하면서 가족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경우에도 부모 역할을 하기가 힘에 부친다. 그런 막중한 역할과 책임을 여성이 혼자 부담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게다가 우리 시대 여성은 일까지 병행해야 한다. 육아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고, 자녀의 성장환경도 고려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1970년대 한 패션 잡지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배우들을 당당한 여성의 표상처럼 인터뷰한 기사를 많이 실어 눈길을 끌었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본에서는 이같이 매스컴의 선동에 의해 미혼모가 된 것을 후회하는 현상을 잡지의 이름을 따 ‘크루아상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유럽에는 한 부모 가족이 지배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들의 청소년기 방황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감춰져 있다. 결혼은 아이를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 한 부모 가족이 차별 받는 일이 없어야겠지만 이를 정책적으로 장려·지원하다 곤란을 겪은 국가들을 뒤따라갈 필요는 없다.

 출산율 향상은 미래를 위해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비혼 가족 지원 정책은 출산 장려가 아닌, 인권과 인간 존엄의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 가족은 효율의 원칙보다 심장의 원칙이 적용되는 공동체다.

 일과 가정의 양립 속에 출산과 양육이 가능케 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아이를 위해 온전한 환경을 이룰 수 있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양질의 교육 환경, 안정적 일자리, 그리고 긴장도를 낮추고 행복도를 높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사회보장제도가 가족 해체를 막고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열쇠다. 출산율을 한두 가지 단편적 정책으로 급격하게 변화시킬 사안으로 봐선 안 된다. 가정을 안정시키는 문화가 형성되게끔 국가적 역량을 모을 때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견고하게 올라갈 것이다.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 전 서울시 교육기획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