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국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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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호동낭-, 이박사의 경구가 생각난다. 동난 무렵 이승만 대통령은 북측의 공산당도 막아야 하지만, 일본이 그 핑계로 무장을 하고 한반도에 상륙하면 총부리를 그리로 돌려야 할 것이라고 했었다. 일본은 언제 그 웃는 얼굴을 승냥이로 바꿀지 모른다는 생각은 이 박사의 한결같은 신념이었다.
그동안 국제환경은 말할 수 없이 뒤바뀌었다. 그러나 일본 쪽에서 군국주의 부활설이 나올 때마다 이 박사의 경구가 상기되곤 하는 것은 거의 예외가 없다. 전후 4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우리는 일본을 사슴의 얼굴로 보다는 승냥이의 얼굴로 기억하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심정이기도 하다.
미국 NYT지는 지난 5일자 동경 특파원 발 기사로 『현재 일본에서는 19세기 및 지난 40년대와 같은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논의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현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그런 낌새는 사실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금년으로 끝나는 제4차 「방위력 정비계획」을 보면 그것은 「방위형」이기보다는 「공격형」의 인상이 강하다. 대륙 상륙·대양전동의 도상연습이 포함되어 있는가 하면 무기의 구조조차도 거기에 맞추고 있다. 이런 계획은 「삼차방」(67년부터 5년간)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경작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의 일각에 꾸준히 도사리고 있는 「국수주의적인 문화의식」이다. 이런 주장을 자결로써 보여준 작가 「미시마」의 사고방식, 그 아류로 볼 수 있는 일본의회의 극우「그룹」등은 끈질기게 군국주의의 경향에 심취하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일본의 군수산업은 괄목할 만한 수준과 규모를 갖고 있다. 「미사일」의 제조는 물론 전투기의 조립·생산도 놀라운 수준을 보여준다. 이들 군수산업의 존재는 일본 사회에서는 피치 못할 부담이 되고 있다. 군국주의로 가는, 보이지 않는 길잡이로서의 구실을 쉽게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핵을 만들지도, 들여오지도, 쌓아두지도 않는다는 이른바 「비핵삼원칙」에 대한 찬반론도 그 사회에선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도리어 그들의 언조는 날로 거칠어 가는 것도 같다.
문제는 일본의 이와 같은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국제환경에도 있다. 중공의 변화는 그 대표인 경우다.
최근 일본의 「자위력」증강을 한번도 트집한 바 없었다. 오히려 주은내는 칭찬을 서슴지 않기까지 했다.
그것은 소련을 겨냥항 의도적인 변절이기도 하다. 달리는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과도 유수 관계를 이루고 있다.
결국 「평화일본」은 국제환경의 산물이어야 하며, 강대국들은 그런 책임을 스스로 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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