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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에즈운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수에즈」운하가 오는 5일부터 재개된다. 67년6월5일『6일 전쟁』으로 폐쇄된 이래 꼭 8년만이다.
「아시아」와「유럽」을 잇는 가장 가까운 항로는「수에즈」운하를 통과하는 길이다. 이 항로는 희망봉을 지나「아프리카」를 한바퀴 돌아야 하는 거리보다 무려 1만6천㎞나 가깝다. 항해시간도 10일이나 단축할 수 있다.
「수에즈」운하의 재개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폐쇄되기 전 이 운하는 세계해상 무역량의 14%를 통과시켰었다.
그러나「수에즈」운하는 중동의 기상을 가늠하는 풍향계가 되어왔다는 점에서도 주목하게 된다. 67년『6일 전쟁』은 곧「수에즈」운하를 폐쇄시켰었다. 그후 무려 8년이나 이 세계무역의 대로가 닫혀있었던 것은 중동의 정세가 얼마나 심각하고 복잡했던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수에즈」운하의 재개와 함께 중동수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포드」미국대통령은「오스트리아」의「잘츠부르크」에서「이집트」의「사다트」대통령과 회담했다. 오는 6월 중순「이스라엘」의「라빈」수상은「워싱턴」으로「포드」대통령을 방문하고 요담할 계획이다.
바로 2개월 전「키신저」미 국무장관이 수심을 안고 중동을 떠날 때와는 상황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도 같다.
「수에즈」운하는 기원전 2천년부터 고대「이집트」의「파라오」왕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했었다.
지금의 운하는 1859년4월25일「포트사이드」쪽에서 굴착되어 10년 만인 1869년8월15일에 공사가 끝났다. 당시 2만명의 노동자들이 노예와 같은 대우를 받으며 10년 동안 12만5천명이나 희생되는 세기적인 대공사였다. 그러나 이 운하는 강대국의 패권이 횡행하는 지대로 바뀌어 영국과「프랑스」가 서로 그 소유권을 이어받은 일도 있었다. 고「나세르」「이집트」대통령은 1956년 기어이「수에즈」주둔 영국군을 철수시키고 국유화를 단행했다.
그러나「수에즈」의 평화는 오지 않았다. 중동의 분쟁이 일어날 때마다 이 운하는 차단되었으며 지금도 그런 곡절을 겪고 있다. 「이집트」는 약19년 동안 이 운하를 소유했지만 그 소유권을 행사한 연수는 10년도 채 못된다.
지금은「이스라엘」이 지난번의「욤·키푸르」전쟁 이래「수에즈」의 바로 턱밑을 점령하고 있다. 「이집트」는「이스라엘」군이 적어도 착탄거리의 바깥으로 철수해야 된다고 주장해 왔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결국 주장에 그치고「수에즈」운하는 다시 개통되었다. 무엇보다도 재정난을 극복하기 위한「이집트」가 다급한 현실에 쫓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세계는 이 운하가 석유의 통로라는 것에 더 큰 관심과 기대를 걸고 있다. 중동의 평화가 곧 세계의 평화처럼 된 오늘의 현상에「이집트」나「이스라엘」은 책임을 느껴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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