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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프로10걸」1위 조치훈 6단 자전적 수기-본지독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나의 바둑은 아직 기풍이랄 게 없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곰곰 생각해 보지만 나 자신도 아직 알 수가 없다. 굳이 말하란 다면 임해봉 「이시다」유의 실전파일뿐이다. 다른 사람과 달리 나는 한판 한판을 소홀히 할 수가 없었고 지금까지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바둑을 두어왔다.
그러나 내 바둑은 임해봉10단처럼 수비에 치중하면서 알기 쉽고 평범한 수를 두어가다가 상대방의 실착이 있으면 이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차분한 바둑 같지도 않다.
또 「사까다」선수권 자처럼 묘수·기수를 연발하는 「스타일」도 물론 아니다. 「이시다」명인 같이 「컴퓨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수를 정확하게 많이 보는 수준도 못된다.
나의 바둑을 대선배들과 비교해 본다는 것부터가 외람 된 일이지만 결국 내 바둑은 아직 이렇다할 특징이 없다. 다시 말해서 내 자신의 「스타일」을 아직 정착시키지 못한 채 선배들의 강점을 흉내내고있는데 지나지 않는 엉거주춤한 상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서글픈 기분도 들지만 언젠가는 독특한 나 자신의 기풍이 형성될 날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또 지금 나의 수준에서 어떤 한 「스타일」로 고정하는 것이 과연 좋은가도 생각해 봐야한다.
나에 비하면 「다께미야」는 2단 때부터 「다께미야」유라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오고 있다. 바둑이론은 귀를 지키고 변과 다음에 중앙으로 발전하는 것인데 「다께미야」는 그런걸 전연 무시하는 사람이다.
중앙을 가장 중요시하고 다음에 변, 귀는 아예 버려도 좋다는 생각이다. 한때 그는 이단자취급까지 받았는데 그렇게 두고도 승률이 좋으니까 「스타일」로 인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세력작전을 펴서 4선,5선에서 설쳐대는 싸움이 무지하게 강한 사람이다.
나는 오지량 선생을 존경하고 바둑으로는 「후지사와」 선생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한다. 승패와 관련 없이 「후지사와」의 바둑이야말로 정말 바둑이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시다」와 임해봉도 강하지만 그것은 바둑에 강하기 보다 승부에 강한 실전파 바둑이다.
임해봉과 「이시다」는 대륙적인 끈질긴 바둑이다. 얼굴에 표정 하나 없는 「포커·페이스」로 참을성이 많기 때문에 상대들이 먼저 지쳐 떨어져버린다. 이에 비하면 「오도다께」나 「가또」는 일본적인 급전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두 앞으로 내가 부딪쳐야할 상대들이다. 특히 「기다니」문하의 삼총사 「이시다」「가또」「다께미야」와 「고바야시」가 강적일 것이다. 또 아직은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 않은 후배들이 될 것이다. 「사까다」선생은 승부로는 어려운 상대이지만 왠지 그는 과거의 사람처럼 느껴지고 별로 두려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최근 본인방전에서 도전권을 따고 「이시다」본인 방에게 첫판을 이겨 50대의 관록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번이 마지막으로 버텨보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일본바둑계는 「사까다」시대에서 임해봉 시대, 그리고 「이시다」시대로 이어왔다. 그러니까 「사까다」의 「타이틀」을 임해봉이 모조리 뺏어다가 「이시다」에게 안겨준 셈이다. 「사까다」에 강한 임해봉은 「이시다」에 약한데 묘하게 「이시다」는 또 「사까다」에겐 약하다. 세 사람은 아직 공존하고 있다고나 할까.
지금이 「이시다」시대라고는 하지만 「이시다」가 언제까지나 천하를 잡고있을 수는 없다. 일본에는 정상을 노리는 기사들이 많아 언젠가는 변화가 오고 말 것이다. 또 「이시다」는 지금도 「부동의 강음」라고는 할 수 없으니까… 「타이틀」을 따고 못 따고는 기칠련삼이란 말도 있듯이 연이 있어야되는 모양이다. <계속><조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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